게인 그라운드
게인 그라운드 (Gain Ground Europe) · 1990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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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액션 게임에서 목표는 적을 다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살아서 반대편 출구로 나가는 일입니다. 적을 다 잡아도 되고, 아무도 안 잡고 몰래 빠져나가도 됩니다. 여기에 조작할 수 있는 캐릭터가 스무 명을 넘고, 붙잡혀 있는 아군을 구출하면 그 캐릭터도 쓸 수 있게 된다는 규칙이 얹히면서, 액션 게임이면서 동시에 병력을 관리하는 게임이 됩니다.
게인 그라운드(Gain Ground)는 세가가 만든 액션 전략 게임의 마스터시스템 이식판입니다.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화면에서 캐릭터 하나를 조작해 적을 처리하거나 피하면서, 화면 아래쪽에서 위쪽 출구까지 도달하는 것이 한 판의 목표입니다. 캐릭터가 쓰러지면 그 자리에 남고, 다른 캐릭터로 그 지점까지 가서 구출하지 못하면 영영 잃습니다.
목표가 다르다는 것
이 게임의 판정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화면 위 출구로 모든 캐릭터를 통과시키거나, 화면 안의 적을 전부 없애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이 게임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강한 캐릭터를 들고 있으면 정면으로 쓸어버리는 쪽이 빠르고, 약한 캐릭터밖에 없으면 조용히 빠져나가는 쪽을 택하게 됩니다.
캐릭터는 하나씩 순서대로 나옵니다. 지금 쓰는 캐릭터로 출구까지 가면 그 캐릭터는 다음 판까지 안전하게 보관되고, 다음 캐릭터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한 판을 깨는 것은 사실 여러 명의 캐릭터를 차례로 무사히 통과시키는 일입니다.
죽은 캐릭터는 쓰러진 자리에 그대로 남습니다. 다음 캐릭터로 그 자리까지 가서 몸을 회수한 뒤 출구로 데려가야 되살아납니다. 위험한 곳에서 죽으면 구하러 가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위험이 되기 때문에, 손실이 손실을 부르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이 게임의 압박감은 거의 전부 여기서 나옵니다.
스무 명 넘는 캐릭터들
캐릭터마다 무기와 사거리, 이동 속도가 다릅니다. 정면으로만 쏘는 캐릭터가 있고, 곡선으로 날려 벽 너머를 때리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발이 빠른 대신 화력이 약한 쪽도 있고, 느리지만 한 방이 강한 쪽도 있습니다. 시대 배경도 제각각이라 활을 쏘는 캐릭터부터 총을 든 캐릭터까지 섞여 있습니다.
핵심은 지형에 맞는 캐릭터를 고르는 것입니다. 장애물 뒤에 숨은 적은 곡사 무기가 아니면 손댈 수 없고, 좁은 통로에서는 사거리가 긴 캐릭터가 안전합니다. 어떤 판에서는 잘 쓰이던 캐릭터가 다음 판에서 전혀 쓸모없어지기도 합니다. 손에 든 캐릭터 목록을 보면서 이 판을 어떻게 풀지 정하는 것이 이 게임의 실질적인 재미입니다.
구출한 캐릭터가 쌓일수록 선택지가 늘어나므로, 초반에 무리해서라도 아군을 확보해 두면 뒤가 편해집니다. 반대로 초반에 캐릭터를 여럿 잃으면 후반에 쓸 수 있는 수단이 급격히 줄어들어 회복이 어려워집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겪는 벽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조작 감각입니다. 캐릭터가 바라보는 방향으로만 쏘기 때문에, 이동하면서 다른 방향을 노리는 것이 생각처럼 되지 않습니다. 방향을 잡고 멈춰서 쏘는 리듬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두 번째는 욕심입니다. 적을 다 잡고 싶어서 위험한 곳까지 들어갔다가 캐릭터를 잃는 일이 초반에 반복됩니다. 이 게임에서는 살아서 나가는 것이 언제나 우선입니다. 애매하면 싸우지 말고 출구로 향하는 판단이 장기적으로 훨씬 이득입니다.
세 번째는 캐릭터를 아끼는 문제입니다. 강한 캐릭터를 계속 쓰다가 잃으면 손실이 크므로, 안전한 판에서는 약한 캐릭터를 먼저 내보내 통과시키고 어려운 판에서만 주력을 꺼내는 운용이 필요합니다. 이 감각이 붙으면 게임이 눈에 띄게 쉬워집니다.
마스터시스템으로 옮기면서
원작은 오락실 기판으로 나온 게임입니다. 여러 명이 함께 하는 협력 플레이가 가능했고, 화면에 많은 물체가 동시에 나오는 구성이었습니다. 마스터시스템은 성능이 한참 떨어지는 기기이기 때문에, 이식 과정에서 화면 구성과 캐릭터 수, 판의 짜임에 손질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도 게인 그라운드의 핵심인 캐릭터 운용과 출구 돌파라는 구조는 그대로 살아남았습니다. 8비트 기기에서 이만한 복잡도의 게임을 굴린다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고, 결과물도 원작의 성격을 잃지 않았습니다. 마스터시스템으로 나온 게임 중에서는 특이한 축에 속합니다.
한국에서의 게인 그라운드
한국에서는 이 게임이 유명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오락실판이 널리 들어오지도 않았고, 마스터시스템 계열 기기가 삼성을 통해 보급되던 시기에도 이 게임을 만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액션 게임 같은 겉모습에 전략 게임의 규칙이 숨어 있어서, 처음 보고 무슨 게임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중에 찾아본 쪽입니다. 요즘 나오는 로그라이크나 전술 게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 게임의 구조가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캐릭터를 잃으면 되돌릴 수 없다는 압박과 매 판마다 어떤 수단으로 풀지 고르는 재미는, 지금 기준으로 봐도 충분히 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