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울
그로울 (Growl World) · 1990 · Taito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우리를 부수면 코끼리가 편이 됩니다
화면 구석에 쇠창살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안에는 동물이 갇혀 있고, 밖에서는 밀렵꾼들이 총을 들고 달려옵니다. 우리를 몇 대 때려 부수면 갇혀 있던 동물이 튀어나오는데, 이 녀석이 도망가는 게 아니라 방금까지 자기를 가둬 두던 무리에게 달려듭니다. 코끼리가 코를 휘둘러 사람을 날려 버리고, 큰 고양잇과 짐승이 화면을 가로질러 적을 물어뜯습니다.
벨트스크롤에서 배경 오브젝트를 부수는 일은 흔하지만, 부순 결과가 아군 한 명으로 돌아오는 구성은 드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적을 먼저 처리하고 우리를 나중에 여느냐, 아니면 맞을 각오를 하고 먼저 우리부터 부수느냐를 매번 고민하게 만듭니다. 몰려드는 와중에 우리를 열어 판을 뒤집었을 때의 기분이 이 게임에서 제일 좋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그로울(Growl)은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걸어 나가며 앞을 막는 무리를 때려눕히는 벨트스크롤 액션입니다. 주인공은 야생동물을 지키는 순찰대원들이고, 상대는 동물을 잡아 팔아넘기는 밀렵 조직입니다. 조작은 이동과 공격, 점프가 전부이고, 여기에 잡기와 던지기,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무기를 줍는 동작이 붙습니다.
한 판의 흐름은 뚜렷합니다. 조금 걸으면 화면이 멈추면서 사방에서 적이 몰려오고, 다 처리하면 다시 화면이 열립니다. 중간중간 갇힌 동물을 풀어 주고, 구간 끝에서는 덩치가 유난히 큰 두목급이 나옵니다. 목표는 조직의 본거지까지 밀고 들어가 우두머리를 잡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단순한데, 동물을 구한다는 명분이 붙어 있어서 때리는 행위에 이상하게 정당성이 생깁니다.
채찍이라는 특이한 주무기
이 게임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채찍입니다. 대부분의 벨트스크롤 주인공이 주먹과 발로 싸우는 데 비해, 여기서는 팔을 뻗은 것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상대를 후려칠 수 있습니다. 사거리가 길다는 것은 벨트스크롤에서 그 자체로 큰 이점입니다. 상대가 내 공격 범위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때릴 수 있으니까요.
바닥에는 총과 칼, 그보다 큰 화기도 떨어져 있습니다. 총을 주우면 사거리가 화면 끝까지 늘어나지만 탄이 금방 떨어지고, 큰 화기는 한 방에 여러 명을 정리하는 대신 쓸 기회가 몇 번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무기를 언제 꺼낼지 아껴 두는 판단이 생깁니다. 잡졸에게 낭비하고 나면 정작 두목 앞에서 채찍만 들고 서 있게 됩니다.
적을 붙잡아 다른 적에게 던지는 것도 유용합니다. 던져진 적이 뒤에 있는 무리를 함께 넘어뜨리기 때문에, 포위당했을 때 한쪽을 정리하고 빠져나오는 수단이 됩니다.
넷이 붙으면 화면이 좁아집니다
이 기판은 네 사람이 동시에 붙을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오락실에서 네 자리가 다 차면 화면이 사람으로 꽉 차서, 누가 내 캐릭터인지 놓치는 일이 흔했습니다. 대신 적도 그만큼 많이 나오기 때문에 사람이 늘었다고 마냥 쉬워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두목전에서는 확실히 유리합니다. 앞에서 맞아 주는 사람과 옆에서 때리는 사람이 나뉘면 두목이 어느 쪽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합니다.
혼자 할 때와 여럿이 할 때 게임의 성격이 꽤 달라집니다. 혼자면 사거리를 살려 거리를 재는 신중한 게임이 되고, 여럿이면 서로 밀치며 무기를 먼저 줍는 난장판이 됩니다. 이 게임을 오락실에서 기억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후자를 떠올립니다.
막히는 지점과 요령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죽는 상황은 총을 든 적에게 정면으로 걸리는 경우입니다. 이 게임의 적은 근접해서 때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멀리서 쏘기도 합니다. 화면 안에 총구가 보이면 그 줄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입니다. 벨트스크롤에서는 위아래로 한 칸만 움직여도 직선 공격을 흘릴 수 있는데, 이 습관을 들이면 체력 소모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또 하나는 화면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가운데에 서면 위아래 양쪽에서 동시에 붙잡히고, 한 번 붙잡히면 연달아 맞습니다. 위쪽이나 아래쪽 끝 선에 붙어서 한쪽만 상대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체력이 위험할 때는 무리해서 우리를 부수러 가지 말고, 먼저 주변 적을 정리한 뒤에 여는 순서를 지키는 게 좋습니다.
1990년의 타이토가 만든 액션
이 게임이 나온 때는 벨트스크롤이 오락실의 주력이던 시기입니다. 캡콤과 코나미가 이 장르로 줄줄이 성과를 내고 있었고, 타이토도 여기에 자기 색을 얹은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그 색이 바로 긴 사거리 무기와 파괴할 수 있는 배경, 그리고 아군이 되는 동물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벨트스크롤과 견주면 그로울은 화면이 넓고 캐릭터가 큰 편입니다. 타격했을 때 상대가 크게 튕겨 나가는 연출도 시원합니다. 유명세로는 같은 해의 다른 대작들에 밀렸지만, 국내 오락실에도 적지 않게 깔려 있었고 4인 기판을 갖춘 가게에서는 자리가 잘 나지 않던 축에 들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조작이 단순해서 처음 잡아도 몇 분 만에 감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