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타이거
블랙 타이거 (Black Tiger) · 1987 · C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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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묶인 노인들
동굴을 걷다 보면 바위 속에 갇힌 노인이 보입니다. 무기로 바위를 부수면 노인이 풀려나면서 무언가를 남깁니다. 어떤 노인은 돈을 주고, 어떤 노인은 갑옷이나 열쇠를 주며, 어떤 노인은 수수께끼 같은 한마디만 남기고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앞으로 달리기만 해서는 안 되고, 벽처럼 보이는 것들을 일일이 때려 보게 만듭니다. 그 습관이 붙는 순간 게임이 훨씬 넓어집니다.
블랙 타이거(Black Tiger)는 근육질 전사를 조종해 지하 세계를 헤쳐 나가는 횡스크롤 액션입니다. 일본에서는 블랙 드래곤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층을 옮기고, 적을 베고, 얻은 돈으로 장비를 사서 강해지는 구조라 단순한 액션보다는 조금 더 모험 게임에 가깝습니다.

사슬 끝에 달린 무기
주인공이 휘두르는 무기는 사슬 끝에 쇠뭉치가 달린 물건입니다. 짧게 뻗었다 돌아오는 이 무기는 처음에는 사거리가 답답할 만큼 짧습니다. 하지만 강화 단계를 올리면 눈에 띄게 길어지고 위력도 붙어서, 같은 적을 상대하는 방식이 아예 달라집니다. 무기를 얼마나 키웠는지가 곧 이 게임의 진행 상황이라고 봐도 됩니다.
갑옷도 같은 방식으로 등급이 있습니다. 좋은 갑옷을 입으면 캐릭터의 모습부터 달라지고 버틸 수 있는 타격도 늘어납니다. 다만 맞을 때마다 갑옷이 한 단계씩 벗겨지기 때문에, 애써 올려놓은 상태가 몇 번의 실수로 원점이 되는 일이 흔합니다.

돈을 쥐고 상점에 들어갑니다
곳곳에서 나오는 돈은 상점에서 씁니다. 무기 강화와 갑옷, 회복 물약, 그리고 숨은 문을 여는 열쇠까지 여기서 삽니다. 무엇을 먼저 살지 고민하게 만드는 구성이라, 당장 살아남기 위해 회복을 챙길지 뒤를 보고 무기에 투자할지 판단해야 합니다.
상점과 숨은 방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천장이나 바닥을 때리면 길이 열리는 경우가 있어서,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진행이 크게 갈립니다. 오락실에서 옆 사람이 갑자기 벽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위치를 외워 오던 시절의 게임입니다.

여덟 개의 라운드와 용
무대는 여덟 개의 라운드로 이어지고, 각 라운드 끝에는 용이 기다립니다. 용은 종류에 따라 불을 뿜거나 화면을 가로지르며 달려들고, 사거리가 짧은 무기로는 접근 자체가 고역입니다. 그래서 보스 앞에서는 무기 강화 상태와 남은 회복 아이템이 그대로 승패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에 기다리는 것은 게임의 제목이 가리키는 검은 용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잃지 않고 지켜 온 장비가 있느냐 없느냐가 이 싸움의 전부이고, 맨몸에 가까운 상태로 도착하면 사실상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마계촌 옆자리의 게임
같은 시기 같은 회사에서 나온 고난도 액션들과 나란히 놓이는 작품입니다. 함부로 뛰면 죽고, 지형을 외우고, 장비를 지켜야 살아남는다는 설계가 그 계보를 그대로 따릅니다. 다만 상점에서 돈을 쓰고 숨은 방을 찾는 요소가 있어서, 순수한 반사신경보다 탐색의 비중이 큽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사슬 무기를 휘두르는 묵직한 타격감이 유난히 좋습니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갑옷이 벗겨지는 그 야박함까지 포함해서, 80년대 후반 오락실 액션의 성격이 잘 남아 있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