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댄스 레볼루션 5th 믹스
댄스 댄스 레볼루션 5th 믹스 (Dance Dance Revolution 5th Mix) · 2001 · Ko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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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오락실 풍경을 바꿔 놓은 기계가 있습니다. 화면 앞에 커다란 발판이 놓여 있고, 그 위에서 사람이 춤을 춥니다. 그리고 그 뒤로 구경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섭니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 곧 볼거리가 되는 구조는 그때까지의 오락실에 없던 것이었습니다. 리듬게임이 오락실을 다시 사람 모이는 곳으로 만든 시기의 한가운데에 이 시리즈가 있습니다.
댄스 댄스 레볼루션(Dance Dance Revolution)은 화면 아래에서 위로 흘러가는 화살표가 판정선에 닿는 순간 해당 방향의 발판을 밟는 리듬게임입니다. 위, 아래, 왼쪽, 오른쪽 네 방향이 전부이고, 규칙은 그것으로 끝입니다. 5th 믹스는 오락실용으로 나온 뒤 가정용 기기로 옮겨진 판본으로, 발판 없이 패드로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규칙은 단순하고 몸은 힘들다
네 방향만 밟으면 되는데 왜 어려운가. 이유는 두 발로 네 자리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른발로 오른쪽을 밟은 다음 곧바로 왼쪽이 나오면 몸을 비틀거나 발을 바꿔야 합니다. 이 발 바꾸기를 잘 짜는 것이 실력이고, 잘못 짜면 다리가 꼬여서 그 뒤 구간이 통째로 무너집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손가락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게임입니다. 박자를 아는 것과 몸이 그 박자대로 움직이는 것이 별개라, 처음 하는 사람은 곡을 알고 있어도 발이 안 따라갑니다. 반대로 익숙해지면 화살표를 하나하나 읽지 않고 덩어리로 보게 되고, 그때부터 진짜로 춤추는 느낌이 납니다.
난이도는 곡마다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습니다. 쉬운 단계는 박자에 맞춰 한 발씩 옮기는 정도라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려운 단계로 올라가면 화살표가 촘촘하게 쏟아지고 발판을 연속으로 밟는 구간이 나옵니다. 같은 곡인데 단계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됩니다.
가정용판의 성격
가정용으로 옮겨진 판본에는 오락실에 없던 것들이 들어갑니다. 혼자 곡을 골라 반복 연습할 수 있고, 자기 기록을 남길 수 있으며, 오락실에서는 요금 때문에 엄두를 못 내던 어려운 곡을 몇 번이고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리듬게임에서 반복 연습이 곧 실력이니,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다만 발판 없이 패드로 하면 게임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손가락으로 하는 리듬게임에 가까워지고, 발로 할 때 어려웠던 구간이 오히려 쉬워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발판을 연결해서 하면 오락실과 비슷한 경험을 집에서 할 수 있습니다.
수록곡은 이 시리즈의 큰 재산입니다. 오락실 판본에서 인기를 얻은 곡들이 실려 있고, 특유의 밝고 빠른 댄스 음악이 화면과 잘 붙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곡을 먼저 알게 된 사람이 많을 정도로 선곡의 힘이 있었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벽은 여덟 박자보다 촘촘한 구간입니다. 박자 사이에 화살표가 하나 더 끼어드는 순간 발 순서가 어긋나고, 한 번 어긋나면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요령은 화살표가 촘촘해지기 전에 발을 좋은 자리에 놓아 두는 것입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즉흥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벽은 판정입니다. 밟긴 밟았는데 계속 낮은 판정이 나온다면 대체로 조금 빠르게 밟고 있는 경우입니다. 화살표가 판정선에 닿는 순간이 아니라 닿을 것 같은 순간에 발이 먼저 나가는 것인데, 의식적으로 한 박자 늦춰 보면 판정이 정리됩니다.
시리즈 안에서의 자리
이 시리즈는 짧은 주기로 새 판본을 내면서 곡을 더하고 규칙을 다듬어 왔습니다. 5th 믹스는 초기 판본들에서 다져진 형태가 무르익은 시기의 작품으로, 수록곡 수와 난이도 구성이 넉넉합니다. 이후 판본에서 화면 구성과 난이도 표기가 크게 바뀌기 전, 초기 계열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같은 회사의 다른 리듬게임들과 견주면 이 게임만의 특징이 뚜렷합니다. 다른 작품들이 손으로 하는 정확도를 겨룬다면, 이쪽은 체력과 몸의 균형까지 요구합니다. 잘하는 사람의 플레이가 그대로 볼거리가 되는 것도 발로 하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한국에서는 같은 시기에 나온 국산 발판 리듬게임의 인기가 워낙 커서, 많은 사람이 발판을 밟는 게임 전체를 하나의 이름으로 뭉뚱그려 불렀습니다. 화살표 네 방향을 쓰는 이 게임과 대각선을 쓰는 국산 쪽은 발 쓰는 방식이 꽤 다른데도, 오락실에서는 나란히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덕분에 두 가지를 다 해 본 사람도 많습니다. 네 방향에 익숙해진 뒤 대각선으로 넘어가면 발 놓는 위치부터 다시 익혀야 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가정용판을 해 보면 그 시절 오락실에서 줄 서서 기다리던 감각이 어렴풋이 되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