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먹다 2 적벽대전
천지를 먹다 2 적벽대전 (Tenchi Wo Kurau Ii Sekiheki no Tatakai Cps Changer 921031 Japan) · 1994 · C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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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문을 열면 들리던 그 목소리
동전을 넣고 캐릭터를 고르면 화면 가득 붉은 갑옷의 장수가 말을 몰고 등장합니다. 오락실에 이 기판이 들어온 날이면 4인용 캐비닛 앞에 줄이 섰습니다. 삼국지를 만화로만 알던 아이들이 관우와 장비를 직접 조종해 조조군 병사를 쓸어 넘기는 경험은 그 전에는 없던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게임은 사람이 많을수록 재미있었습니다. 옆에 앉은 모르는 사람과 말없이 호흡을 맞추며 진영을 무너뜨리다 보면, 끝날 때쯤엔 서로 눈인사를 하게 되는 그런 게임이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삼국지 2(Tenchi wo Kurau II)는 캡콤이 CPS1 기판으로 낸 벨트스크롤 액션입니다.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삼국지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유비 진영의 장수 다섯 명 가운데 하나를 골라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군하며 적을 베어 나갑니다. 부제인 적벽대전이 말해 주듯 이야기의 축은 조조의 대군과 맞서는 적벽 싸움입니다.
전작에 해당하는 천지를 먹다는 횡스크롤 액션에 가까웠지만, 2편에서는 완전한 벨트스크롤 형식으로 바뀌면서 캡콤 특유의 타격감이 살아났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는 보통 그냥 삼국지, 혹은 삼국지 2라고 불렀습니다.
다섯 장수와 각자의 손맛
고를 수 있는 장수는 관우, 장비, 조운, 황충, 위연입니다. 관우는 청룡언월도를 크게 휘둘러 사거리가 길고 한 방이 묵직합니다. 장비는 장팔사모로 찌르는 공격이 빠르고, 체력과 힘이 가장 앞서서 초보자가 잡기 좋았습니다.
조운은 창을 다루는 속도가 빨라 연타가 잘 들어가고 이동이 날렵합니다. 황충은 나이 든 노장답게 육중한 대신 공격 판정이 넓고, 위연은 무게와 속도가 중간쯤이라 두루 무난합니다. 사람마다 손에 맞는 장수가 달라서, 오락실에서 늘 같은 자리 같은 캐릭터만 고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는 구간, 그리고 보스
이 게임의 인상을 가장 강하게 남기는 것은 말입니다. 스테이지 중간에 등장하는 말에 올라타면 공격 범위와 위력이 확 달라지고, 달리면서 병사들을 그대로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말을 탄 채로 적진을 가로지르는 장면은 다른 벨트스크롤에서 보기 어려운 통쾌함이 있었습니다.
다만 말은 피해를 받으면 쓰러지므로 아껴 써야 합니다. 보스전 직전에 말을 온전히 남겨 두느냐가 클리어의 갈림길이 되곤 했습니다.
적을 쓰러뜨리거나 항아리를 부수면 만두, 고기, 술 같은 회복 아이템이 나옵니다. 캡콤 게임 특유의 통닭 회복 아이템이 여기서는 중화풍으로 바뀌어 있는 셈입니다. 체력이 바닥일 때 나온 만두 하나가 판을 뒤집기도 했습니다.
스테이지 끝에는 이름 있는 장수가 보스로 나옵니다. 하후돈, 장료, 허저 같은 조조군 장수들이 차례로 막아서고, 이들은 잡몹과 달리 가드를 하고 반격을 합니다. 무작정 근접해서 때리면 되받아치기 때문에 한 대 치고 물러서기를 반복하는 인내심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다시 해도 남는 것
삼국지를 소재로 한 액션 게임은 이후로도 많이 나왔지만, 이 작품만큼 단순하고 시원한 손맛을 가진 것은 드뭅니다. 배경 그림 하나하나에 깃발과 진영이 꼼꼼히 그려져 있고, 병사들이 무너지는 연출도 지금 보면 오히려 정갈합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원래 이 게임의 몫은 여럿이 함께 밀고 나가는 데 있었습니다. 그 시절 오락실의 소란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한 판 잡아 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