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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마스터

드래곤 마스터 (Dragon Master) · 1994 · Un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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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파이터 II 를 그대로 베껴 그린 국산 대전 격투

캐릭터가 앞으로 걸어나오는 모습, 웅크렸다가 일어서는 동작, 점프의 궤적까지 어디선가 본 것 같다면 착각이 아닙니다. 이 게임의 애니메이션 상당수는 캡콤 스트리트 파이터 II 의 스프라이트를 그대로 따라 그린 것입니다. 손발의 관절이 꺾이는 각도, 피격 시 몸이 튕기는 프레임 수가 원본과 겹치고, 그 위에 다른 옷과 다른 얼굴을 입혀 놓은 형태입니다. 지금 보면 낯이 뜨거운 방식이지만, 90년대 초중반 한국 아케이드 업계가 어떤 자리에서 출발했는지를 보여 주는 표본이기도 합니다.

드래곤 마스터(Dragon Master)는 1994년 유니코 일렉트로닉스가 내놓은 2D 대전 격투 게임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여덟 명의 파이터 중 하나를 골라 토너먼트를 치러 올라가는 구조로, 3판 2선승제로 상대를 꺾고 마지막에 플레이 불가능한 보스 셋을 상대합니다. 조작은 8방향 레버에 버튼 여러 개를 쓰는 당시 격투 게임의 표준 배치를 따르며, 약·중·강으로 나뉜 펀치와 킥, 그리고 커맨드 입력으로 나가는 필살기가 있습니다.

드래곤 마스터 대전격투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4)

여덟 명의 파이터와 세 명의 보스

선택 화면에는 남성 캐릭터 K. 가르시아, 다크 맨, B. 도사, 재키, 제다이 라이언, 조이가 있고 여성 캐릭터로 글로리아와 델리자가 있습니다. 이름만 봐도 짐작되듯 국적과 무술을 하나씩 배정해 놓은 전형적인 구성입니다. 인도 계열 수행자 콘셉트, 중국 무술가 콘셉트, 남미 격투가 콘셉트가 나란히 서 있는 방식이라 처음 보는 사람도 누가 무엇을 하는 캐릭터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캐릭터마다 장풍 계열, 돌진 계열, 대공 계열 필살기를 한두 개씩 들고 있는데, 커맨드 체계 역시 아래에서 앞으로 굴리는 파동권 계열과 앞에서 아래로 꺾어 넣는 승룡권 계열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II 를 손에 익힌 사람이라면 별도 학습 없이 대부분의 기술이 나갑니다. 이 점이 오히려 이 게임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췄습니다.

여덟 명을 모두 꺾고 나면 다이나모, 모자드, 가너 세 보스가 차례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선택할 수 없는 CPU 전용 캐릭터로, 판정과 체력, 데미지 배분이 일반 캐릭터와 다르게 잡혀 있습니다. 동전 여러 개를 각오하게 만드는 구간이 여기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이자 문제는 CPU 의 입력 반응입니다. 정상적인 대전 격투 게임이라면 상대의 행동을 읽고 대응하는 흐름이 성립하는데, 여기서는 CPU 가 플레이어의 레버 입력에 즉각 반응해 대공기를 꺼내거나 가드를 굳히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뛰어들면 맞고, 장풍을 쏘면 뛰어넘어 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답답해하는 지점이 정확히 여기입니다.

요령은 정직하게 붙어서 싸우기보다 상대의 패턴이 갈리는 거리를 찾는 것입니다. 화면 절반 정도의 중거리에서 하단 발차기를 툭툭 내밀며 상대가 앞으로 나오는 타이밍을 유도하고, 나오는 순간에만 필살기를 넣는 식이 안정적입니다. 무리한 점프 공격은 대부분 손해입니다. 또 이 게임은 가드 후 반격의 프레임 여유가 넉넉한 편이라, 상대 필살기를 막고 나서 크게 한 대 돌려주는 흐름을 만들면 체력 교환에서 앞설 수 있습니다.

체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라운드를 버리고 다음 라운드에서 처음부터 다시 페이스를 잡는 편이 낫습니다. 3판 2선승제라 한 라운드를 내주는 것 자체는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유니코라는 회사와 그 시절 사정

유니코 일렉트로닉스는 90년대 중반 국내 아케이드 기판을 만들던 여러 회사 중 하나입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II 이후 전 세계 오락실이 대전 격투 일색으로 바뀌자, 한국 업체들도 앞다투어 격투 게임을 시도했습니다. 문제는 그 시절 국내 업체들에 캡콤이나 SNK 수준의 애니메이터와 기획 인력, 그리고 개발 기간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결과적으로 기존 히트작의 그림과 시스템을 참고하는 정도를 넘어 그대로 가져다 쓰는 사례가 적지 않았고, 이 게임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축입니다.

기술적으로 보면 배경 연출과 색 처리는 나름대로 공을 들인 흔적이 보입니다. 다만 캐릭터 히트박스와 판정, 그리고 프레임 데이터가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아 대전의 밀도가 원본에 미치지 못합니다. 격투 게임에서 진짜 어려운 부분이 그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판정 설계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이 게임이 증명합니다.

한국 오락실에서의 자리

동네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만나는 경우는 대개 인기 기판이 이미 다른 자리에 다 차 있을 때였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II 대시나 킹 오브 파이터즈 앞에는 줄이 서 있고, 구석 자리에 낯선 격투 게임이 하나 놓여 있는 식입니다. 그림이 어디서 본 듯해서 앉았다가 조작감이 미묘하게 다른 것을 느끼고 몇 판 만에 일어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게임들이 남긴 흔적은 있습니다. 국내 업체가 격투 게임 기판을 직접 만들어 유통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후 한국 아케이드 개발이 퍼즐과 슈팅 쪽에서 나름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의 앞부분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그 시절 한국 오락실의 공기를 기록한 자료로서 다시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