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퀘스트 1
드래곤 퀘스트 (Dragon Quest Japan) · 1986 · En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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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됐다
지금은 너무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마을에서 무기를 사고, 밖으로 나가 몬스터와 싸우고, 경험치를 모아 레벨을 올리고, 여관에서 자고, 왕에게 돌아가 보고하는 흐름. 일본식 RPG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설명이 필요 없는 이 구조를 처음으로 완성해서 대중에게 내놓은 게임이 드래곤 퀘스트입니다.
1986년 당시 일본에서 RPG는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소수의 취미였습니다. 이 게임은 그 복잡한 장르를 패미컴 컨트롤러 버튼 두 개로 할 수 있게 다듬었고, 그 결과 일본 게임 시장의 지형 자체를 바꿔 놓았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드래곤 퀘스트 1(Dragon Quest)은 알레프가르드 왕국에 나타난 마왕 류큐칸을 물리치기 위해 용사의 후손이 홀로 길을 떠나는 RPG입니다. 동료 없이 혼자 싸우고, 몬스터도 한 번에 한 마리씩 나옵니다.
라다톰 성에서 왕의 명을 받는 것으로 시작해, 세계를 돌며 힘을 기르고 흩어진 물건들을 모은 뒤 마왕의 성으로 향합니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이 이 게임을 배우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혼자서 싸운다는 것
일대일 전투는 이 시리즈에서 1편에만 있는 특징입니다. 이후 작품들은 파티를 꾸리지만, 첫 작품은 끝까지 혼자입니다.
그래서 전투가 아주 담백합니다. 때리거나, 주문을 쓰거나, 약초를 먹거나, 도망칩니다. 선택지가 적은 만큼 각 선택의 무게가 큽니다. 체력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을 때 한 대 더 때릴지 회복할지를 고민하는 순간이 매번 찾아옵니다.
도망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것도 이 게임의 특징입니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나면 도망이 정답이고, 실제로 도망에 실패해서 죽는 일도 흔합니다. 죽으면 소지금의 절반을 잃고 성으로 돌아가는데, 이 벌칙이 무겁지 않아서 다시 도전하게 만듭니다.
세계를 넓혀 가는 방식
처음에 갈 수 있는 곳은 성 주변의 좁은 지역뿐입니다. 조금만 멀리 가면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가 나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돌아오게 됩니다.
레벨을 올리고 좋은 장비를 사면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게 되고, 새 마을을 발견하면 거기서 다시 장비를 갖춰 더 멀리 갑니다. 열쇠를 얻으면 잠긴 문을 열 수 있고, 배를 얻으면 바다를 건널 수 있습니다. 벽을 하나씩 넘으며 지도가 넓어지는 이 구조가 이후 수많은 RPG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의 대화가 유일한 정보원이라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는 장치가 따로 없어서, 사람들의 말을 잘 기억해 두어야 다음 목적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해 보면
요즘 RPG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불편한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같은 곳을 여러 번 오가며 레벨을 올려야 하고, 이동 속도가 느리며,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명령을 골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을 지나고 나면, 이 게임이 왜 사람들을 사로잡았는지가 보입니다. 한 레벨이 오를 때마다 체감되는 변화, 새 장비를 샀을 때 확실히 달라지는 전투, 못 가던 곳에 드디어 발을 들일 때의 성취감이 아주 또렷합니다. 장식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RPG의 뼈대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이는, 지금도 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