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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아가의 탑

드루아가의 탑 (Tower of Druaga the Japan) · 1985 · Na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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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을 알아야 열리는 보물상자

이 게임이 전설처럼 이야기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각 층마다 보물상자가 하나씩 숨어 있는데, 그 상자를 나오게 하는 조건이 층마다 다르고 화면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어떤 층은 특정 몬스터를 잡아야 하고, 어떤 층은 벽을 정해진 횟수만큼 부수어야 하고, 어떤 층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서 있어야 합니다. 알고 나면 허무하지만, 모르면 평생 못 찾습니다. 그 시절 이 게임의 공략 정보가 손으로 베껴 가며 돌아다닌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드루아가의 탑(Tower of Druaga)은 남코가 만든 미로 액션 게임입니다. 기사 길이 되어 60층짜리 탑을 한 층씩 올라가고, 각 층에서 열쇠를 찾아 문으로 들어가면 다음 층으로 넘어갑니다. 목표는 꼭대기에 있는 악마 드루아가를 쓰러뜨리고 붙잡힌 카이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패미컴판은 오락실에 먼저 나왔던 원작을 가정용으로 옮긴 것입니다.

드루아가의 탑 어드벤처 게임 화면 1 - 패미컴 (1985)

한 층에서 하는 일

한 층은 작은 미로 하나입니다. 벽으로 나뉜 통로를 돌아다니며 열쇠를 찾고, 문 앞까지 가면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하지만 층마다 몬스터가 배치되어 있고, 이들이 통로를 막고 서 있어 그냥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전투 방식이 독특합니다. 방패를 든 채로 걸어 다니다가 검을 뽑으면 앞으로 찌르는 자세가 되는데, 검을 뽑고 있으면 그쪽으로는 공격할 수 있지만 방어가 약해집니다. 결국 언제 검을 내밀고 언제 방패로 막을지를 몬스터의 움직임에 맞춰 결정하는 게임입니다. 상대에 따라 정면으로 부딪혀야 이기는 놈이 있고, 아예 피해 다니는 편이 나은 놈도 있습니다.

층에는 제한 시간이 있습니다. 시간을 다 쓰면 체력이 깎이기 시작하므로 한 층에서 지나치게 오래 헤맬 수는 없습니다. 보물 조건을 찾겠다고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면 시간에 쫓기게 되는데, 이 압박이 게임을 계속 조여 옵니다.

층이 올라갈수록 미로가 복잡해지고 몬스터의 수도 늘어납니다. 초반에는 통로를 다 돌아다녀도 여유가 있지만, 중반을 넘어가면 열쇠 위치를 빨리 찾지 못하면 시간이 부족해집니다. 그래서 익숙해질수록 미로 전체를 도는 대신 열쇠가 있을 법한 방향부터 살피는 식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보물이 곧 실력

보물상자에서 나오는 물건은 단순한 점수가 아니라 캐릭터의 성능을 직접 바꿉니다. 공격력이 오르는 검, 방어력이 오르는 갑옷과 방패, 벽을 부수는 곡괭이, 숨은 것을 보이게 하는 물건, 이동 속도를 올리는 신발까지 종류가 다양합니다. 이것들을 순서대로 챙겨 가느냐 아니냐에 따라 후반 층의 체감 난이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문제는 놓치면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아래층으로 내려올 수 없으니, 필요한 장비를 못 챙긴 채 올라가면 뒤에서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사실상 어느 층에서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를 알고 시작하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

처음에는 보물을 다 찾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층을 올라가는 감각부터 익히는 편이 좋습니다. 열쇠 위치를 빠르게 찾고, 몬스터를 상대하는 요령을 몸에 익히는 것이 먼저입니다. 특히 검을 내미는 타이밍을 잘못 잡으면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어도 허무하게 당합니다.

몬스터마다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일찍 파악해 두면 좋습니다. 무작정 쫓아오는 놈, 벽을 통과하는 놈, 마법을 쏘는 놈이 있고 상대법이 각각 다릅니다. 통로 모퉁이를 이용해 시야에서 벗어나거나, 좁은 길에서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등 지형을 쓰는 법을 알면 훨씬 오래 버팁니다.

이후에 남긴 것

이 게임은 이후 여러 작품으로 이어지는 큰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었고, 일본식 액션 롤플레잉의 초기 형태로 자주 언급됩니다. 장비를 모아 캐릭터를 키우고, 미로를 돌며 숨은 것을 찾아내고, 정보를 아는 사람이 유리해지는 구조는 이후 수많은 게임이 물려받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락실보다 패미컴 쪽으로 접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조건을 모르는 채로 붙잡으면 몇 층 못 올라가고 끝나지만, 아는 사람 옆에서 한 번 보고 나면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됩니다. 지금 해 봐도 그 성격은 그대로여서, 한 층씩 조건을 알아 가는 과정 자체가 이 게임의 내용입니다.

음악도 오래 기억되는 요소입니다. 짧은 선율이 층 내내 반복되는데, 단순하지만 묘하게 계속 남아서 이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몇 마디만 들어도 바로 알아차립니다. 탑을 오른다는 단조로운 행위에 리듬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