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파트
램파트 (Rampart Trackball) · 1990 · Atari Games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성이 무너지는 게임인데, 무너뜨리는 쪽이 아니라 다시 쌓는 쪽이 주인공입니다. 대포를 쏘는 시간보다 벽돌을 놓는 시간이 더 중요하고, 그 벽돌을 놓는 손이 떨리면 다음 판이 없습니다. 아케이드 슈팅이라고 하기엔 머리를 너무 쓰고, 퍼즐이라고 하기엔 손이 너무 바쁜 묘한 게임입니다.
램파트(Rampart)는 아타리 게임스가 1990년에 내놓은 아케이드 게임으로, 슈팅과 실시간 전략과 퍼즐을 한 판 안에 욱여넣은 물건입니다. 트랙볼 버전은 조이스틱 대신 트랙볼로 커서를 굴려 조준하고 블록을 놓게 만든 캐비닛으로, 손목의 감각이 그대로 성적으로 나오는 구성이었습니다. 최대 세 명이 동시에 붙을 수 있어서, 오락실에서는 옆자리 사람과 서로 성을 부수는 난투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한 판이 세 토막으로 굴러갑니다
램파트의 한 라운드는 뚜렷하게 세 단계로 나뉩니다. 첫째는 배치 단계입니다. 지도 위에서 자기가 차지할 성을 고르고, 성벽 안쪽에 대포를 심습니다. 대포를 몇 문 놓을 수 있느냐는 내가 완전히 둘러싼 성벽이 몇 개냐로 정해지므로, 이 단계에서 이미 다음 라운드의 화력이 결정됩니다.
둘째는 전투 단계입니다. 커서를 움직여 바다의 함선과 상륙한 적을 포격합니다. 포탄은 즉시 맞는 게 아니라 날아가서 떨어지므로, 움직이는 배는 앞을 보고 쏴야 합니다. 이때 적도 내 성벽을 쏘기 때문에, 화면 아래에서는 내 대포가 나가고 있고 화면 위에서는 내 벽이 뚫리고 있는 상황이 동시에 벌어집니다.
셋째가 이 게임의 진짜 정체인 수복 단계입니다. 테트리스처럼 생긴 조각들이 순서대로 내려오고, 제한 시간 안에 그 조각들로 무너진 성벽을 다시 닫힌 고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고리가 하나라도 완성되면 살아남고, 하나도 못 닫으면 그대로 게임 오버입니다. 총알 한 발보다 조각 한 개가 목숨에 가깝습니다.
조각을 어디에 놓느냐가 전부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성을 크게 지으려 드는 것입니다. 넓게 둘러싸면 대포를 많이 놓을 수 있으니 화력이 세지긴 하지만, 그만큼 벽이 길어져서 다음 수복 단계에 메워야 할 구멍도 늘어납니다. 조각은 내가 고르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 큰 성은 한 번 크게 뚫리면 시간 안에 못 닫습니다.
그래서 실력자들은 오히려 성을 작게, 그리고 둥글게 유지합니다. 작은 성 하나를 확실히 닫아 목숨을 보전한 뒤, 여유가 생긴 라운드에만 바깥으로 넓혀 나갑니다. 조각이 애매하게 남으면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다음 라운드에 벽으로 이어 쓸 수 있는 위치에 미리 깔아 두는 것도 요령입니다.
또 하나, 벽은 반드시 닫힌 고리여야 인정된다는 규칙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화면상으로는 성처럼 보여도 한 칸이 비어 있으면 안쪽 대포는 죽은 대포입니다. 시간이 촉박할 때는 예쁘게 복원하려 하지 말고, 가장 짧은 경로로 구멍을 틀어막아 어떻게든 고리 하나를 완성하는 쪽이 옳습니다.
난이도가 튀는 지점
초반 라운드는 배가 몇 척 오지 않아서 여유롭지만, 라운드가 올라가면 함선이 무리 지어 들어오고 포격 밀도가 확 올라갑니다. 특히 상륙정이 병력을 내려놓기 시작하면 성벽 바로 옆에서 두들겨 맞기 때문에, 배를 바다에서 미리 잡지 못하면 수복 단계가 지옥이 됩니다. 포격 단계에서 어디를 먼저 때릴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감각이 이때부터 갈립니다.
트랙볼 버전 특유의 어려움도 있습니다. 트랙볼은 조준이 빠른 대신 미세 조정이 어려워서, 한 칸 차이로 조각을 잘못 놓는 사고가 자주 납니다. 처음에는 굴리는 힘을 일부러 줄여서 커서를 천천히 움직이는 연습을 하는 편이 결국 빠릅니다.
대결이 본체입니다
혼자 하는 램파트도 재미있지만, 이 게임의 진가는 사람끼리 붙을 때 나옵니다. 서로 인접한 성을 골라 놓고, 상대의 대포를 부수는 동시에 내 벽을 지켜야 합니다. 상대가 조각을 놓느라 정신없는 사이에 결정적인 한 칸을 노려 뚫어 놓으면, 상대는 그 한 칸 때문에 고리를 못 닫고 그대로 탈락합니다.
그래서 대전에서는 무작정 많이 쏘는 것보다 상대의 벽 중 가장 메우기 까다로운 자리를 골라 부수는 심리전이 중요합니다. 모서리나 좁은 틈을 뚫어 두면, 남은 조각 모양에 따라 상대가 손도 못 쓰는 경우가 생깁니다. 서로 이걸 알고 나면 한 판이 상당히 잔인해집니다.
아타리다운 실험작
1990년 무렵 아케이드는 대전 격투와 벨트스크롤 액션이 화면을 채우던 시기였는데, 램파트는 그 흐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실시간 전략 게임의 성 짓기와 퍼즐 게임의 조각 맞추기를 아케이드 호흡으로 압축한 초기 사례에 가깝습니다. 이런 장르 섞기를 겁 없이 시도하는 것이 그 시절 아타리 게임스의 색깔이기도 했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는 흔한 기판은 아니었지만, 들어온 곳에서는 오래 붙어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규칙을 한 번 이해하면 판마다 상황이 달라져 질리지 않고, 무엇보다 옆 사람과 붙었을 때 나오는 반응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총 쏘는 게임인 줄 알고 앉았다가 벽돌 쌓다가 죽고, 그게 분해서 다시 동전을 넣게 되는 종류의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