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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 스코프

레이더 스코프 (Radar Scope) · 1980 · Ninte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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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지 않아서 역사가 된 게임

게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실패작을 하나 꼽으라면 이 게임이 빠지지 않습니다. 닌텐도는 1980년 이 기판을 들고 미국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럭저럭 반응이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처참했습니다. 수천 대분의 기판과 캐비닛이 창고에 쌓인 채 팔리지 않았고, 미국 법인은 재고를 떠안고 궁지에 몰렸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정이 재고 캐비닛에 넣을 새 게임을 급히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맡은 사람이 당시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야모토 시게루였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동키콩입니다. 동키콩은 폭발적으로 팔렸고 닌텐도의 운명을 바꿨습니다. 이 게임이 망하지 않았다면 동키콩도, 어쩌면 그 뒤에 이어진 마리오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 겁니다. 팔리지 않은 기판 하나가 게임 역사를 통째로 틀어 놓은 셈입니다.

레이더 스코프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0)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레이더 스코프(Radar Scope)는 화면 아래쪽의 기체를 좌우로 움직이며 위쪽의 적을 쏘아 맞히는 고정형 슈팅입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계열의 기본 구조 위에, 화면을 비스듬히 눕힌 원근 표현을 얹었습니다. 적들이 저 멀리 위쪽에서부터 내 쪽으로 밀려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도록 화면을 설계한 것이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한 판의 흐름은 단순합니다. 화면 위쪽에 진을 친 적 무리를 전부 처리하면 다음 판으로 넘어가고, 판이 넘어갈수록 적이 빨라지고 공격이 거세집니다. 적이 쏜 탄에 맞거나 돌진해 오는 적과 부딪히면 목숨이 하나 줄고, 목숨이 다 떨어지면 끝입니다. 목표는 점수 하나뿐입니다.

레이더 스코프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0)

처음 하는 사람을 위한 요령

이 계열 게임의 기본은 화면 끝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좌우 가장자리에 붙어 있으면 한쪽에서만 위험이 오기 때문에 신경 쓸 방향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초보자가 가운데서 우왕좌왕하다 죽는 일이 많은데, 일단 한쪽 끝을 잡고 거기서부터 차근차근 적을 줄여 나가는 편이 훨씬 안정적입니다.

다음은 적이 돌진해 오는 순간을 읽는 일입니다. 이 시절 슈팅의 적은 대개 대열을 유지하다가 몇몇이 튀어나와 플레이어 쪽으로 날아듭니다. 대열이 흐트러지는 낌새가 보이면 미리 반대쪽으로 빠져야 합니다. 튀어나온 다음에 반응해서는 늦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근 표현이 들어간 화면은 처음에는 오히려 헷갈립니다. 적이 실제로 어느 가로 위치에 있는지가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몇 판 하다 보면 눈이 적응하는데, 그전까지는 적의 그림 크기보다 화면 아래쪽 자기 기체와의 좌우 정렬을 기준으로 보는 편이 낫습니다.

레이더 스코프 슈팅 게임 화면 3 - 오락실 (1980)

왜 미국에서 안 팔렸나

이 게임 자체가 형편없는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화면 연출은 오히려 당시 기준으로 공을 들인 편이었고, 원근 표현은 눈에 띄는 시도였습니다. 문제는 시기와 경쟁작이었습니다. 1980년 미국 오락실은 이미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아스테로이드로 한 차례 열풍이 지나간 뒤였고, 곧이어 팩맨과 갤럭시안이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그 한복판에 인베이더 계열의 또 다른 변주를 들고 들어간 것이 문제였습니다. 새롭기는 한데 판을 바꿀 만큼은 아니었고, 운영자 입장에서는 이미 잘 도는 인기 기판을 두고 이름 없는 회사의 신작을 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시장에 늦게 도착하면 소용이 없다는, 오락실 업계에서 수없이 반복된 교훈의 초기 사례입니다.

지금 해 볼 만한 이유

순수하게 게임으로만 보면 짧고 담백한 고정형 슈팅입니다. 몇 분이면 한 판이 끝나고, 잘하면 조금 더 오래 버팁니다. 요즘 기준으로 대단한 깊이를 기대할 물건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을 한 번쯤 켜 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화면에 나오는 것이 곧 동키콩 직전의 닌텐도가 어떤 회사였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화투와 장난감을 만들던 회사가 아케이드에 발을 들이고, 크게 넘어지고,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게임 산업의 중심이 되는 과정의 출발점이 바로 이 화면입니다. 창고에 쌓여 있던 그 캐비닛들이 어떤 게임을 담고 있었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