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파이어버드
스페이스 파이어버드 (Space Firebird REV 04 U) · 1980 · Ninte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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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가 슈팅을 만들던 시절
닌텐도라고 하면 마리오와 젤다를 떠올리지, 우주선을 몰고 외계인을 쏘는 게임을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1980년의 닌텐도는 아직 그런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화투와 완구를 만들던 회사가 막 아케이드 기판 사업에 발을 들인 참이었고, 그때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던 것이 우주 슈팅이었습니다. 그래서 닌텐도도 우주 슈팅을 만들었습니다. 이 게임이 바로 그 결과물입니다.
동키콩이 나오기 한 해 전입니다. 아직 미야모토 시게루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이고, 닌텐도가 무엇을 잘하는 회사인지 아무도 모르던 시기입니다. 그 시절의 닌텐도가 남의 유행을 따라가며 만든 게임이 어떤 물건이었는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게임은 단순한 옛날 슈팅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스페이스 파이어버드(Space Firebird)는 화면이 스크롤하지 않는 고정 화면 슈팅입니다. 플레이어는 화면 아래쪽의 기체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위쪽에서 날아 내려오는 적을 쏘아 떨어뜨립니다. 적을 모두 없애면 다음 판으로 넘어가고, 적탄이나 적기에 부딪히면 죽습니다. 규칙은 여기까지가 전부입니다.
조작은 좌우 이동과 사격, 그리고 회피 버튼입니다. 이 회피 버튼이 이 게임의 특징입니다. 누르면 기체가 순간적으로 위험에서 빠져나가는데,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언제 쓸지 판단하는 것이 실력이 됩니다. 좌우로만 도망치던 당시 슈팅에 선택지를 하나 더 얹은 셈입니다.
적의 움직임도 그냥 줄지어 내려오지 않습니다. 무리를 이루고 있다가 갑자기 몇 마리가 대열에서 떨어져 나와 플레이어 쪽으로 급강하합니다. 이 급강하가 위협의 대부분입니다. 위쪽만 보고 있으면 옆에서 들어오는 놈에게 당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패는 화면 구석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구석은 안전해 보이지만 피할 방향이 한쪽뿐이라, 급강하하는 적이 들어오면 빠져나갈 데가 없습니다. 가운데 근처에서 좌우로 움직이며 양쪽을 다 열어 두는 편이 훨씬 오래 삽니다.
두 번째는 회피 버튼을 아끼다가 못 쓰는 것입니다. 위험할 때 쓰라고 있는 기능인데, 언제 진짜 위험한지 판단이 안 돼서 그냥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위험해 보이면 바로 쓰는 편이 낫습니다. 몇 판 하면 정말 필요한 순간이 어디인지 감이 옵니다.
세 번째는 조준입니다. 적이 움직이는 중이니 지금 있는 자리가 아니라 갈 자리를 향해 쏴야 맞습니다. 이걸 익히기 전까지는 총알만 낭비하고 적은 계속 살아 있어서 화면이 점점 위험해집니다.
그 시절 오락실 사정
1980년 전후는 우주 슈팅이 오락실을 뒤덮고 있던 시기입니다. 한 게임이 크게 성공하면 비슷한 게임이 수십 개 쏟아지는 것이 당연했고, 오락실에 들어가면 우주선이 나오는 화면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이 게임도 그 물결 속에서 나온 물건이고, 그 안에서 회피라는 자기만의 장치로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이 게임 자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시기 한국에 들어온 초기 아케이드 기판은 정식 수입보다 복제 기판이 훨씬 많았고, 게임 이름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채 화면 생김새로만 불리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은 낯설어도 화면을 보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지금 켜 보면
지금 하면 당연히 단순합니다. 화면은 한 장이고, 적 종류도 많지 않고,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런데 몇 판 하다 보면 이상하게 손을 못 놓게 됩니다. 죽은 이유가 매번 분명하고, 다음번에는 그걸 안 하면 되니까 계속 다시 넣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닌텐도가 아직 닌텐도가 되기 전에 무엇을 만들고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런 게임을 몇 개 만들어 본 다음에 동키콩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다음 해에 벌어진 일이 훨씬 더 놀랍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