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볼
루나 볼 (Lunar Ball) · 1985 · Comp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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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대가 왜 꼭 직사각형이어야 할까요. 이 뻔한 전제를 뒤집은 것 하나로 평범한 당구 게임이 완전히 다른 물건이 됐습니다. 별 모양, 십자 모양, 한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 모양, 톱니처럼 들쭉날쭉한 모양까지, 이 게임의 테이블은 판마다 생김새가 다릅니다. 게다가 마찰 계수를 조절할 수 있어서, 공이 얼음판 위처럼 미끄러지게 만들 수도 있고 모래밭처럼 금방 멈추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당구와 미니 골프를 섞어 놓은 듯한 이 발상이 지금 봐도 신선합니다.
루나 볼(Lunar Ball)은 기묘한 모양의 당구대에서 흰 공을 쳐서 색깔 공을 모두 구멍에 넣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입니다. 판이 넘어갈수록 테이블 모양이 험해지고 구멍 위치가 야박해집니다. 규칙은 당구 그 자체인데, 무대가 이상해서 매 판이 새로운 퍼즐이 됩니다.
한 판이 굴러가는 방식
조작은 세 단계로 정리됩니다. 먼저 흰 공을 놓을 자리를 정하고, 다음으로 방향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세기를 정해 칩니다. 세기는 게이지가 오르내리는 방식이라 원하는 지점에서 버튼을 놓아야 하고, 이 게이지 조절이 생각보다 손맛을 좌우합니다.
한 판을 넘기려면 테이블 위의 공을 전부 넣어야 합니다. 흰 공이 구멍에 빠지면 벌칙을 받고, 정해진 실패 횟수를 넘기면 끝납니다. 그래서 무작정 세게 치는 것이 답이 아닙니다. 세게 치면 공이 여기저기 튀어 다니면서 우연히 들어가는 일도 있지만, 그만큼 흰 공이 엉뚱한 구멍으로 사라질 확률도 올라갑니다.
여기서 마찰 설정이 중요해집니다. 미끄러운 설정에서는 한 번 친 공이 벽을 여러 번 튕기며 오래 굴러다니므로 두세 쿠션을 계산해 넣는 플레이가 가능해지고, 뻑뻑한 설정에서는 정직하게 조준해서 한 번에 넣는 플레이가 됩니다. 같은 테이블도 이 설정 하나로 성격이 바뀝니다.
이상한 테이블을 읽는 법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자주 하는 실수는 공만 보는 것입니다. 이 게임에서 진짜로 봐야 할 것은 벽입니다. 테이블 모양이 기괴하다는 것은 곧 반사각이 특이하다는 뜻이고, 직선 경로가 막혀 있는 배치라도 벽을 한 번 끼면 열리는 길이 있습니다.
두 번째 요령은 순서입니다. 눈에 잘 보이는 공부터 치우고 싶겠지만, 구석에 박혀 있거나 다른 공에 가려진 어려운 공을 먼저 처리하는 편이 결과적으로 안전합니다. 쉬운 공은 나중에도 쉽지만, 어려운 공은 마지막에 하나 남으면 여러 번의 실패를 부릅니다.
세 번째는 흰 공을 다음 자리에 세우는 감각입니다. 이번 공을 넣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친 다음에 흰 공이 어디에 멈출지를 함께 계산하면 다음 한 수가 훨씬 편해집니다. 실제 당구에서 말하는 그 개념이 이 게임에서도 그대로 통합니다.
만든 곳과 이식판 이야기
이 게임을 만든 곳은 훗날 슈팅 게임으로 이름을 크게 남기는 일본의 소규모 개발사입니다. 작은 인원으로 빠르게 만들고 여러 기종에 부지런히 옮기는 것이 이 회사의 방식이었고, 루나 볼 역시 여러 기종으로 나왔습니다. 국내에는 패미컴 이식판이 더 널리 알려졌지만, MSX판도 별도로 나와 있었습니다.
MSX판은 테이블 수가 다른 기종판과 다르고 일본에서만 나왔습니다. 화면은 소박하지만 이 장르에서 화려함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이 굴러가고 벽에 튕기는 물리 표현만 제대로면 게임이 성립하는데, 8비트 기계에서 그 계산을 무리 없이 해낸 것이 이 게임의 기술적 성취입니다.
한국에서 이 게임
당구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대중적인 취미였습니다. 그래서 당구를 소재로 한 게임은 낯설지 않았고, 오락실에도 당구 기판이 꾸준히 있었습니다. 다만 그 기판들은 대체로 현실적인 당구를 흉내 내는 쪽이었지, 별 모양 테이블 같은 것을 내놓지는 않았습니다.
MSX를 갖고 있던 집에서 이 게임은 조용히 오래 붙들게 되는 부류였습니다. 반사신경을 요구하지 않고, 한 판이 짧으며, 실패해도 억울하지 않아서 형제나 친구가 번갈아 잡기에 좋았습니다. 화려한 액션 카트리지가 먼저 손이 가더라도,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 돌아가는 것은 이런 게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 켜 봐도 낡았다는 느낌이 덜합니다. 물리 규칙과 도형만으로 만들어진 재미는 시간을 잘 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판에 몇 분이면 충분하니 가볍게 잡아 보기에 알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