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승부
무한승부 (Muhanseungbu Semicom Baseball Korea) · 1997 · Sem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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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기판으로 만든 오락실 야구
1997년 오락실에서 한글 제목이 뜨는 야구 게임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무한승부는 세미콤이 만든 국산 아케이드 야구 게임입니다. 90년대 국내 게임업계에서 아케이드 기판을 직접 만들어 오락실에 내놓는 회사는 손에 꼽혔고, 그중 세미콤은 꾸준히 여러 장르에 손을 댄 곳이었습니다.
야구는 한국 오락실에서 늘 수요가 있던 소재였습니다. 프로야구가 자리 잡은 뒤로 아이들도 규칙을 알았고, 둘이 마주 앉아 한 경기를 붙는 형태가 오락실 구조와 잘 맞았기 때문입니다. 무한승부는 그 수요를 국산 기판으로 받아 낸 작품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무한승부(Muhanseungbu)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의 오락실 야구 게임입니다. 공격할 때는 레버로 타격 위치를 잡고 버튼으로 스윙하며, 친 뒤에는 주자의 진루를 조작합니다. 수비할 때는 투수로서 구질과 코스를 정해 던지고, 타구가 뜨면 야수를 움직여 잡고 송구합니다.
혼자 하면 컴퓨터 팀과 붙고, 둘이 하면 서로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습니다. 오락실 야구 게임의 승부는 대개 여기서 갈립니다. 상대가 사람이면 투구 코스를 읽히지 않게 섞어야 하고, 컴퓨터라면 그 패턴을 찾아내면 됩니다.
투수와 타자, 무엇을 먼저 익힐까
오락실 야구를 처음 하는 사람은 대부분 타격부터 재미를 붙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승부를 가르는 것은 투구입니다. 공을 던진 뒤 궤적이 휘는 구질을 섞어 쓰면 상대는 좀처럼 정타를 내지 못합니다. 반대로 같은 코스로만 던지면, 사람 상대든 컴퓨터 상대든 금세 읽히고 장타를 맞습니다.
타격에서는 급하게 휘두르지 않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런 게임에서 공이 휘는 구질은 던지는 순간이 아니라 중간에 궤적이 꺾이므로, 처음 보이는 코스만 보고 스윙하면 헛치게 됩니다. 한 박자 참고 실제 도달 지점을 보고 휘두르는 연습을 하면 타율이 확실히 올라갑니다.
수비가 어려운 게임입니다
이 게임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부분이 수비, 특히 외야 수비입니다. 타구가 높이 뜨면 그림자나 낙하 지점을 보고 야수를 그 자리로 옮겨야 하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공이 어디에 떨어질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뻔한 뜬공을 놓치고 주자를 몇 개씩 보내는 일이 흔합니다.
여기서 필요한 요령은 공을 쫓지 말고 낙하 지점으로 먼저 가는 것입니다. 공을 따라 움직이면 계속 뒤늦게 도착합니다. 타구가 뜨는 순간 방향과 세기를 보고 대략의 지점을 잡아 그쪽으로 미리 달려가면, 도착한 뒤 미세하게 조정할 시간이 생깁니다.
내야 수비에서는 송구 대상을 잘못 고르는 실수가 잦습니다. 급할수록 무조건 1루로 던지는 습관을 들이면 최소한 아웃 하나는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세미콤과 90년대 국산 아케이드
세미콤은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 여러 아케이드 게임을 낸 국내 회사입니다. 퍼즐, 액션, 스포츠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기판을 내놓았고, 그 게임들은 주로 국내 동네 오락실과 문방구 앞 기계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당시 국산 아케이드 개발은 여건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기판 성능도 제한적이고 개발 기간도 길게 잡을 수 없어서, 완성도보다는 빨리 내놓고 회전시키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 국산 게임들에는 아쉬운 구석이 있지만, 동시에 한글로 된 게임을 오락실에서 만날 수 있게 해 준 것도 이들이었습니다. 무한승부는 그 사정을 그대로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이 게임이 놓이던 자리는 대형 오락실의 중앙이 아니라 동네 오락실 한쪽이었습니다. 둘이 마주 앉아 9회까지 붙으면 시간이 꽤 걸리니, 방과 후에 친구와 승부를 내기에 좋은 종목이었습니다. 야구 게임 특유의 역전 가능성 덕분에, 마지막 이닝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경기가 자주 나왔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조작감이나 수비 판정에서 시대의 한계가 느껴지지만, 그 어설픔까지 포함해 그 시절 국산 오락실 게임의 질감입니다. 설치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로 켤 수 있으니, 뜬공 하나를 놓치고 억울해하던 그 기분을 다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