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리그 96
원더 리그 96 (Wonder League 96 Korea) · 1996 · Sem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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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이면 한국 프로야구가 이미 십수 년째 굴러가던 때고, 오락실에서도 야구 게임 한 대쯤은 흔했습니다. 그런데 그 야구 게임들이 대부분 일본 기판이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국내 제작사가 만든 야구 게임이 등장한 배경에는 그런 사정이 있습니다.
원더 리그 96(Wonder League 96)은 세미콤이 1996년에 내놓은 아케이드 야구 게임입니다. 전작에 해당하는 원더 리그 스타에 이어 나온 작품으로, 두 명이 마주 앉아 투수와 타자를 번갈아 맡는 대전 야구의 기본 구성을 따릅니다. 혼자 하면 컴퓨터 팀을 상대로 경기를 치릅니다.
한 경기의 흐름
조작은 이 장르의 표준입니다. 공격 차례에는 방향키로 타이밍과 방향을 맞춰 배트를 휘두르고, 공이 맞으면 주자의 진루를 지시합니다. 수비 차례에는 투수를 조작해 구종과 코스를 정하고, 던진 뒤에도 공의 궤적을 어느 정도 흔들 수 있습니다. 타구가 나가면 야수를 움직여 잡고 송구합니다.
아케이드 야구 게임은 실제 야구보다 이닝이 짧고 진행이 빠릅니다. 한 경기를 동전 몇 개 안에 끝내야 하니, 투구와 타격의 판정이 시원시원하게 잡혀 있고 수비 조작도 단순화되어 있습니다. 대신 그만큼 한 타석 한 타석의 무게가 큽니다.
투수 싸움에서 갈립니다
이런 게임에서 초보와 숙련자를 가르는 지점은 대개 투구입니다. 같은 코스로만 던지면 사람이든 컴퓨터든 금방 적응해서 두들깁니다. 바깥쪽과 안쪽, 높은 쪽과 낮은 쪽을 섞고, 빠른 공과 변화구를 번갈아 넣어야 상대 타이밍이 흐트러집니다.
특히 던진 뒤에 궤적을 흔드는 조작이 있는 게임에서는, 상대가 배트를 내밀기 시작한 순간에 코스를 바꾸는 것이 가장 잘 듣습니다. 다만 이걸 너무 자주 쓰면 볼이 되고, 볼넷으로 주자를 쌓으면 한 방에 크게 무너집니다.
타격에서는 무리해서 크게 치려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아케이드 야구는 대개 홈런이 잘 나오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그만큼 헛스윙도 잘 나옵니다. 주자가 있을 때는 확실한 코스에만 배트를 내밀어 진루를 이어 가는 쪽이 점수로 이어집니다.
컴퓨터 상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혼자 하는 경우 이 게임이 꽤 어렵다는 평이 있습니다. 아케이드 게임의 특성상 동전을 계속 넣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 컴퓨터 팀의 타격 판정과 수비 반응이 사람보다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던진 공도 맞아 나가고, 잘 친 타구도 잡히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혼자 할 때는 실점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운영하는 편이 낫습니다. 크게 이기려 하기보다, 볼넷을 주지 않고 한 점씩 쌓아 가는 방식입니다. 반대로 사람 둘이 붙으면 이런 보정이 의미 없어지므로, 대전에서 훨씬 재미있는 게임이 됩니다.
세미콤이라는 회사
세미콤은 1990년대 한국 아케이드 기판을 대표하는 제작사 중 하나입니다. 야구 게임은 이 회사의 초기 주력 종목이었고, 원더 리그 계열 외에도 여러 스포츠와 퍼즐 게임을 꾸준히 내놓았습니다. 이후에는 캐주얼한 퍼즐 게임 쪽으로 더 알려지게 됩니다.
그 시절 국내 제작사들은 일본 유명작의 구조를 참고해 자체 기판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세미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국내 시장을 겨냥한 만큼 한국어 화면과 국내 정서에 맞춘 요소를 넣는 시도가 있었고, 그 점이 당시 손님들에게 반가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오락실에서 야구 게임의 자리
야구 게임은 오락실에서 묘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대전 격투처럼 짧고 격렬하지도 않고, 슈팅처럼 혼자 몰입하기도 애매합니다. 한 경기에 시간이 걸려서 회전이 느리니 오락실 주인 입장에서도 아주 반가운 기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구 게임이 꾸준히 있었던 이유는, 야구를 아는 사람 둘이 앉으면 다른 어떤 게임보다 오래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프로야구 시즌 이야기를 하면서 한 이닝씩 주고받는 그 분위기가, 격투 게임의 승부와는 다른 종류의 재미였습니다.
원더 리그 96도 그런 게임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화면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규칙을 아는 사람이라면 앉자마자 바로 할 수 있고, 둘이 붙으면 한참 시간이 갑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오락실의 공기가 궁금하다면 한번 잡아 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