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하자드 가이덴
바이오하자드 가이덴 (Resident Evil Gaiden Europe En Fr de Es It) · 2001 · Capcom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바이오하자드를 흑백에 가까운 작은 화면에 넣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무모해 보였습니다. 이 시리즈의 공포는 어두운 복도의 질감과 갑작스러운 소리, 그리고 카메라가 보여 주지 않는 사각에서 나오는 것인데, 휴대용 기기에는 그 무기가 전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그 조건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대신 전투 방식을 완전히 새로 만드는 길을 택했습니다.
바이오하자드 가이덴(Resident Evil Gaiden)은 바다 위를 떠도는 여객선을 무대로 한 외전입니다. 화면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고, 그 상태로 통로를 돌아다니며 단서를 모으고 문을 열어 갑니다. 시리즈 본편과 마찬가지로 탄약과 회복 약품이 빠듯해서, 눈에 보이는 적을 전부 상대하려 들면 금세 바닥이 납니다.
조준선을 멈추는 전투
이 게임에서 가장 특이한 부분은 적과 마주쳤을 때 벌어지는 전투 화면입니다. 적에게 다가가면 화면이 바뀌면서 좌우로 계속 움직이는 표시가 나타나고, 그것이 정해진 구간을 지나갈 때 버튼을 눌러 맞히는 방식입니다. 반사신경으로 타이밍을 잡는 구조인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탐색 화면과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라 처음에는 어리둥절합니다.
익숙해지면 이 방식이 나름의 긴장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확한 지점에 맞히면 훨씬 큰 피해를 주므로, 급하게 여러 번 누르는 것보다 한 번을 제대로 노리는 편이 결국 탄약을 아낍니다. 손이 떨려 계속 빗나갈 때의 답답함이 오히려 이 시리즈의 무력감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자원을 아끼는 운영
본편이 그렇듯 여기서도 싸우지 않는 것이 최선일 때가 많습니다. 통로에 서 있는 적을 돌아서 지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편이 낫고, 꼭 필요한 길목을 막고 있는 것만 처리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탄약은 배 안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넉넉하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회복 수단 관리도 중요합니다. 체력이 조금 깎였다고 바로 쓰면 정작 위험한 구간에서 쓸 것이 없습니다.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여유분을 남겨 두는 판단이 필요하고, 이 긴장이 게임을 끝까지 끌고 갑니다.
배 안을 돌아다니는 일
무대가 여객선 하나로 한정되어 있어서, 같은 통로를 여러 번 오가게 됩니다. 열쇠나 도구를 찾아 앞서 막혀 있던 문으로 돌아가는 흐름이 반복되는데, 이것 역시 본편에서 익숙한 구조입니다. 다만 화면이 작고 통로가 비슷하게 생겨서 길을 잃기 쉬우니, 처음 갔을 때 어디가 막혀 있었는지를 기억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라는 무대는 도망갈 데가 없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와 잘 맞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이니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좁은 공간을 반복해서 지나며 점점 조여드는 느낌이 화면의 한계를 어느 정도 메워 줍니다.
외전이라는 자리
이 게임은 제목에 외전을 달고 있는 만큼 본편 이야기의 줄기와는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시리즈를 이어서 따라온 사람이라면 익숙한 인물을 만나는 반가움이 있지만, 본편의 연표에서 이 이야기가 차지하는 자리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리즈를 모르고 시작해도 이해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이 시기에는 큰 시리즈를 휴대용 기기로 옮기려는 시도가 여럿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축소판에 그쳤지만, 이 게임은 아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 결과가 모두에게 환영받지는 못했어도, 시도 자체는 지금 봐도 흥미롭습니다.
지금 해 보면
본편 같은 공포를 기대하고 붙잡으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화면이 작고 소리가 단순하니 놀라게 만드는 연출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자원을 아끼며 좁은 배를 한 칸씩 넓혀 가는 그 특유의 압박은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 작품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휴대용 기기로 나온 외전이라 눈에 띌 기회가 적었고, 같은 시기 본편 쪽이 훨씬 화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리즈를 좋아했던 사람에게도 이 게임은 뒤늦게 발견하는 물건인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