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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칩 GP

록맨 에그제 배틀칩 GP (Mega Man Battle Chip Challenge Virtual Console) · 2003 · C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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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놓고 지켜보는 록맨

록맨 에그제 시리즈를 해 본 사람이 이 게임을 처음 켜면 손이 갈 곳을 잃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조작할 게 없습니다. 록맨은 알아서 움직이고 알아서 칩을 씁니다. 플레이어가 하는 일은 전투 전에 끝나 있습니다.

이 발상이 처음에는 낯설지만, 곧 다른 종류의 재미가 보입니다. 전투 중에 손으로 수습할 수 없으니 덱을 짜는 단계가 전부가 됩니다. 어떤 칩을 어떤 순서로 넣었는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나올지를 미리 계산해 두는 게임이 되는 것입니다.

배틀칩 GP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화면 1 - 게임보이 어드밴스 (2003)

어떤 게임인가

배틀칩 GP(Mega Man Battle Chip Challenge)는 록맨 에그제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외전입니다. 본편처럼 격자 위를 뛰어다니며 실시간으로 싸우는 대신, 미리 구성한 칩 덱으로 자동 진행되는 전투를 치르는 카드 게임에 가까운 구조입니다.

플레이어는 대회에 출전하는 참가자로서 상대와 차례로 붙습니다. 전투 전에 사용할 내비와 칩 덱, 그리고 각 칩에 붙은 조건을 정해 두면, 전투가 시작된 뒤에는 그 설정대로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승리하면 새 칩과 상금을 얻어 덱을 더 다듬을 수 있습니다.

덱을 짜는 재미

칩에는 공격력과 소모 값, 그리고 발동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강한 칩은 그만큼 조건이 까다롭거나 자주 나오지 않기 때문에, 세게 한 방을 노리는 덱과 약한 공격을 꾸준히 넣는 덱 사이에서 성격을 정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에 따라 덱을 바꾸는 판단입니다. 방어가 두꺼운 상대에게는 관통이나 다단 공격이, 회복을 자주 하는 상대에게는 순간 화력이 필요합니다. 같은 덱으로 계속 밀다가 특정 상대에게만 막히는 경험을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덱을 여러 벌 준비하게 됩니다.

본편과의 관계

이 작품은 록맨 에그제 본편 시리즈의 번호를 잇는 게임이 아니라 갈래를 달리한 외전입니다. 등장하는 내비와 칩 이름은 본편에서 익숙한 것들이라, 시리즈를 따라온 사람에게는 반가운 얼굴이 많이 나옵니다.

다만 본편의 실시간 전투를 기대하고 들어오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손놀림이 아니라 준비의 게임이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재미가 열립니다. 전투를 지켜보다가 내가 짜 둔 순서대로 칩이 터져 나가는 순간의 만족감은 본편과 종류가 다릅니다.

지금 해 보면

한 판이 짧고 결과가 빨리 나오기 때문에 짬짬이 하기에 좋습니다. 지고 나면 덱의 어느 부분이 문제였는지가 비교적 분명하게 보여서, 다시 짜 보고 싶어지는 종류의 패배를 줍니다.

시리즈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기억에 남습니다. 록맨 에그제라는 세계관을 카드 게임의 문법으로 옮기면 어떻게 되는지를 실험한 결과물이고, 그 실험 자체가 이 카트리지의 값어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