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걸전 게임보이어드밴스판
삼국지 영걸전 (Sangokushi Eiketsuden J Risingcaravan) · 2002 · Ko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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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이길 수도 있는 삼국지
삼국지를 소재로 한 게임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이 작품만큼 유비 편에서 역사를 뒤집어 보고 싶다는 마음을 정확히 건드린 게임은 드뭅니다. 정사대로라면 촉은 결국 무너지지만, 이 게임은 특정 전투에서 조건을 만족시키면 원래 역사와 다른 길이 열리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죽어야 할 장수가 살아남고, 져야 할 싸움을 이기면서 이야기가 갈라지는 순간이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삼국지 영걸전(Sangokushi Eiketsuden)은 사각 칸으로 나뉜 맵 위에서 부대를 하나씩 움직여 싸우는 시뮬레이션 RPG입니다. 직접 칼을 휘두르는 액션 게임도, 내정을 돌보는 경영 게임도 아닙니다. 전투 하나하나가 곧 이야기의 한 장면이고, 그 전투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다음 이야기를 결정합니다.
장수 한 명이 부대 하나
이 게임에서 유비, 관우, 장비 같은 장수는 각각 하나의 부대를 지휘합니다. 유닛에는 보병, 기병, 궁병, 노병, 그리고 책사가 이끄는 군사 부대처럼 병종이 나뉘어 있고, 병종끼리는 서로 물고 물리는 상성이 걸려 있습니다. 기병은 궁병에게 강하고, 궁병은 보병을 멀리서 두들기며, 창을 든 보병은 달려드는 기병을 막아 세웁니다. 상성을 무시하고 정면으로 부딪히면 아무리 무력이 높은 장수라도 병력이 빠르게 녹습니다.
장수는 전투를 치르면서 경험치를 얻고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오르면 무력과 지력이 올라가고, 지휘할 수 있는 병력의 최대치도 늘어납니다. 여기에 아이템으로 무기와 방어구를 붙여 주면 같은 장수라도 체감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관우에게 좋은 무기를 쥐여 주고 전선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 순간의 쾌감이 이 게임을 오래 붙잡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계략과 지형
무력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판이 자주 나옵니다. 제갈량과 방통 같은 책사 부대는 화계로 넓은 범위를 태우고, 낙뢰로 강한 적 부대를 단숨에 깎아내며, 혼란을 걸어 적이 자기편을 치게 만듭니다. 특히 화계는 지형과 맞물릴 때 위력이 극단적으로 올라가서, 좁은 골짜기나 마른 숲에 적을 몰아넣고 불을 붙이는 전개가 여러 전투의 정답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형 자체도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숲에 들어간 부대는 방어가 오르고, 물가에서는 이동이 제한되며, 높은 곳을 잡은 쪽이 유리합니다. 다리나 관문처럼 한 번에 한두 부대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목을 먼저 차지하면, 적이 아무리 많아도 순서대로 상대할 수 있습니다. 병력 차이를 지형으로 메우는 계산이 이 게임 공략의 핵심입니다.
갈라지는 이야기
각 전투에는 승리 조건 말고도 숨은 조건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정 장수를 제한 턴 안에 쓰러뜨리거나, 아군을 한 명도 잃지 않거나, 도망치는 적을 놓치지 않는 식입니다. 이 조건을 채우면 원래 이야기에서 죽는 인물이 살아남고, 적이었던 장수가 아군으로 들어오며, 이후 전개가 통째로 바뀝니다. 조건을 몰랐던 첫 회차와 알고 하는 두 번째 회차의 이야기가 다르다는 점이 이 게임의 수명을 크게 늘려 놓았습니다.
반대로 무리하게 조건을 노리다 주요 장수를 잃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쓰러진 장수는 다음 전투부터 자리를 비우고, 그만큼 남은 부대의 부담이 커집니다. 세이브를 언제 하고 어디서 다시 시작할지를 계산하며 진행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붙습니다.
휴대기로 옮겨온 판
게임보이 어드밴스판은 원래 PC에서 나온 작품을 휴대기로 옮긴 것입니다. 화면이 좁아진 만큼 맵을 한눈에 보기는 어렵지만, 한 전투가 짧게 끊기는 시뮬레이션 RPG의 성격상 휴대기와 궁합이 좋은 편입니다. 전투 하나를 끝내고 저장한 다음 덮어 두었다가, 다시 열어 다음 전투를 시작하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삼국지를 잘 몰라도 진행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누구인지 설명이 붙고, 이야기는 도원결의부터 순서대로 흘러갑니다. 오히려 이 게임으로 삼국지 인물 관계를 처음 외운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