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페스와 다섯 악마
볼페스와 다섯 악마 (Borfesu) · 1987 · Xtal S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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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가 되려면 시험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 시험이 필기가 아니라 실전입니다. 견습 마법사인 주인공은 자격증을 받기 위해 악마를 처치하러 떠나야 하고, 이 다소 엉뚱한 설정이 그대로 게임 전체의 목표가 됩니다. 무거운 서사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던 시절에, 자격 시험이라는 이유로 모험을 떠나게 하는 것부터가 이 게임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볼페스와 다섯 악마(Borfesu)는 크리스탈 소프트가 만든 액션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화면은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시점이고, 한 화면씩 넘어가며 이동합니다. 적을 직접 공격해 쓰러뜨리고, 얻은 것으로 강해지고, 막힌 곳을 여는 방법을 찾아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구조입니다.
어떤 식으로 하는 게임인가
기본 행동은 이동과 공격입니다. 화면 안의 적을 피하거나 잡으면서 출구를 찾아 다음 화면으로 넘어갑니다. 화면이 스크롤되지 않고 통째로 바뀌는 방식이라, 새 화면에 들어서는 순간 적의 배치를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들어가자마자 적 한가운데에 놓이는 경우가 있어 입구 근처에서 한 박자 멈추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액션 롤플레잉이라는 이름대로 순수한 반사신경 게임은 아닙니다. 캐릭터가 강해지는 요소가 있고, 도구를 얻어야 열리는 길이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스스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진행이 막히면 대개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아직 힘이 모자라 정면 돌파가 안 되거나, 필요한 것을 아직 얻지 못했거나입니다.
이 시절 일본산 액션 롤플레잉이 대체로 그랬듯이 친절한 안내는 없습니다. 지도도 목표 표시도 없으니, 종이에 지나온 화면을 그려가며 하는 것이 사실상 정석이었습니다. 지금 해도 어느 화면을 지나왔는지 메모해 두면 훨씬 수월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첫 번째 벽은 초반의 약함입니다. 시작 직후에는 적 한둘도 버겁고, 무리해서 앞으로 나가면 금방 죽습니다. 초반에는 안전한 화면을 오가며 힘을 쌓아두는 편이 결과적으로 빠릅니다. 이 준비를 건너뛰고 진도부터 빼려는 사람이 가장 자주 좌절합니다.
두 번째는 길 찾기입니다. 화면 단위로 넘어가는 구조라 방향 감각을 잃기 쉽고, 같은 곳을 뱅뱅 도는 일이 흔합니다. 갈림길을 만나면 한쪽을 끝까지 밀어보고 아니면 되돌아오는 식으로 체계적으로 지워나가야 합니다.
세 번째는 회복 관리입니다. 체력이 줄어든 상태로 계속 밀고 나가다가 갑자기 강한 적을 만나 허무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전한 상태에서 정리하고 넘어가는 습관, 특히 새 지역에 들어가기 전에 상태를 채워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그 시절 일본 컴퓨터 롤플레잉
1980년대 중후반 일본의 8비트 컴퓨터에서는 액션과 롤플레잉을 섞는 시도가 활발했습니다. 턴제로 명령을 고르는 정통 롤플레잉과, 실시간으로 칼을 휘두르는 액션 사이 어딘가에서 각 회사가 저마다의 해법을 내놓던 시기입니다. 이 작품도 그런 실험의 하나이고, 한 화면씩 넘기며 탐색하는 방식은 당시 흔히 쓰이던 구조였습니다.
메모리와 화면 성능의 제약이 이런 설계를 강제한 면도 있습니다. 넓은 세계를 매끄럽게 스크롤할 여유가 없으니 화면 단위로 끊었고, 대신 화면마다 다른 배치를 넣어 탐험하는 맛을 냈습니다. 제약에서 나온 형식이 오히려 그 시절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국내에서의 자리
이런 일본산 컴퓨터 게임은 국내에서 정식으로 소개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MSX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복사된 매체로 접했고, 일본어를 읽을 수 없으니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모른 채 무작정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 상태로도 몇 시간씩 붙잡고 있었던 것은, 화면을 하나씩 열어보는 재미 자체가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 게임인지 알고 시작할 수 있고, 죽어도 부담 없이 다시 켤 수 있습니다. 그 시절 화면 단위 탐색형 액션 롤플레잉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확인해 보기에는 이만한 표본이 드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