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권 아초
성권 아초 (Seiken Acho) · 1985 · Irem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성룡 영화에서 시작된 그 게임의 MSX판
1984년 아이렘이 오락실에 내놓은 스파르탄 X는 성룡 주연 영화의 판권을 받아 만든 게임이었습니다. 주인공이 5층짜리 건물을 한 층씩 올라가며 잡졸들을 때려눕히고 층마다 기다리는 두목을 쓰러뜨린 뒤, 꼭대기에서 연인을 구해 내는 이야기입니다. 서양에는 쿵푸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나갔고, 한국 오락실에서는 그냥 쿵푸로 통했습니다. 이 게임이 1985년 MSX 카트리지로 옮겨진 것이 성권 아초입니다. 제목의 성권은 거룩할 성에 주먹 권을 쓴 말인데, 한자를 못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쿵푸 아초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주먹과 발차기, 그리고 오른쪽으로 걷기
성권 아초(Seiken Acho)는 옆으로 흐르는 화면에서 주먹과 발차기만으로 밀고 나가는 액션 게임입니다. 조작은 이동, 주먹, 발차기가 전부입니다. 여기에 앉기와 점프가 붙어서, 위에서 오는 공격은 앉아서 피하고 아래로 기어 오는 것은 뛰어넘거나 앉아서 때립니다. 무기도 아이템도 사실상 없습니다. 이 단순함이 이 게임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한 층의 구조는 정해져 있습니다. 오른쪽 끝까지 걸어가면 두목이 나타나고, 그 두목을 정해진 횟수만큼 때리면 다음 층으로 올라갑니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끝없이 몰려오는 잡졸들입니다. 이들은 죽여도 죽여도 계속 나오므로, 전부 상대하려 들면 시간이 먼저 떨어집니다. 이 게임은 싸우는 게임인 동시에 시간과 싸우는 게임입니다.
층이 올라갈수록 적의 종류가 늘어납니다. 맨손으로 달려드는 적, 던지는 것을 쓰는 적, 낮게 기어 오는 것, 천장에서 떨어지는 것이 섞여 나옵니다. 각각 대응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화면에 무엇이 나왔는지를 보고 즉시 앉을지 뛸지 결정해야 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반드시 겪는 벽
가장 흔한 실수는 다 때려잡으려는 것입니다. 잡졸은 무한히 나오니 전부 처리한다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붙잡히지 않을 만큼만 떨쳐 내고 계속 오른쪽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이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 대부분이 첫 층에서 시간 초과로 죽는데, 이유는 실력이 아니라 이 판단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붙잡히는 상황입니다. 잡졸에게 달라붙이면 레버를 좌우로 흔들어 떨어내야 하는데, 그동안 체력이 계속 깎입니다. 애초에 붙잡히지 않는 거리 관리가 훨씬 중요합니다. 발차기가 주먹보다 사거리가 길고, 주먹은 사거리가 짧은 대신 회전이 빠릅니다. 멀리서는 발, 붙었을 때는 주먹이 기본입니다.
세 번째는 두목전입니다. 두목은 잡졸과 달리 일정한 공격 패턴을 반복합니다. 무작정 달려들면 그대로 맞습니다. 두목의 동작 하나가 끝나고 다음 동작이 시작되기 전의 짧은 틈에만 들어가서 한 대 치고 빠지는 것이 정석입니다. 이 치고 빠지기를 배우는 순간부터 이 게임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됩니다.
오락실판과 MSX판의 거리
MSX는 오락실 기판보다 성능이 한참 아래였습니다. 스프라이트 개수와 색 표현에 제약이 있었고, 화면을 부드럽게 스크롤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절의 가정용 이식판은 대체로 적의 수가 줄고 움직임이 뻣뻣해집니다. 대신 게임의 뼈대, 즉 층을 올라가며 두목을 잡는 구조와 주먹 발차기 두 개의 공격 체계는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MSX 이식판은 성능 때문에 오히려 조작이 더 정직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화면에 나오는 적이 적으니 한 마리 한 마리의 거리와 타이밍이 더 잘 보입니다. 오락실판이 물량에 밀려 죽는 게임이라면, 이 이식판은 실수해서 죽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이 한 판이 남긴 것
스파르탄 X는 옆으로 걸어가며 맨손으로 싸우는 게임의 원형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나온 벨트스크롤 액션들, 그러니까 여러 명이 함께 화면을 밀고 나가는 게임들이 전부 이 구조에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위아래로도 움직일 수 있게 되고, 무기를 줍고, 여러 명이 동시에 붙는 식으로 발전했지만 뿌리는 같습니다.
한국에서 이 게임은 오락실판으로 먼저 알려졌습니다. 성룡 영화가 극장에서 인기를 끌던 시기와 겹쳤고, 게임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명확해서 남녀노소가 붙었습니다. MSX가 보급된 뒤에는 이 카트리지판으로 집에서 같은 것을 해 볼 수 있게 됐고, 학교에서 배운 요령을 집에서 시험해 보는 식으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