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리프
셰리프 (Sheriff) · 1979 · Ninte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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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가 패미컴을 내기도 한참 전, 마리오도 동키콩도 없던 시절에 만든 오락실 게임입니다. 캐비닛 그림을 그린 사람이 갓 입사한 미야모토 시게루였고, 게임을 설계한 사람은 나중에 닌텐도 하드웨어의 굵직한 부분을 맡게 되는 다케다 겐요였습니다. 지금 보면 화면은 단색에 가깝고 캐릭터는 몇 개 안 되는 점으로 그려져 있지만, 그 시절 닌텐도가 오락실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가 이 한 판에 다 들어 있습니다.
셰리프(Sheriff)는 서부극을 배경으로 한 고정 화면 총싸움 게임입니다. 화면 한가운데 보안관인 나 하나가 서 있고, 사방을 산적들이 빙 둘러싸고 조금씩 조여 옵니다. 목표는 단순합니다. 다가오는 산적을 전부 쏴서 없애고 살아남는 것, 그리고 잡혀 있는 여자를 구해내는 것입니다. 조작은 움직임과 조준이 따로인데, 이 분리가 이 게임의 전부라고 해도 됩니다.
움직임과 조준이 따로 논다는 것
이 게임에서 가장 먼저 당황하는 부분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방향과 총을 겨누는 방향이 별개로 조작됩니다. 원래 기계에서는 이동용 조이스틱과 조준용 다이얼이 따로 달려 있었습니다. 1979년 오락실 기계 중에 이렇게 조작계를 둘로 쪼갠 물건은 흔치 않았고, 가정용 기기에는 아예 없던 방식이었습니다.
덕분에 나오는 움직임이 요즘 말로 하면 트윈 스틱 슈터에 가깝습니다. 뒤로 물러나면서 앞을 쏘고, 옆으로 돌면서 뒤를 겨누는 식의 조작이 됩니다. 총구 방향을 계속 유지한 채 자리를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이 게임의 핵심 기술이고, 이걸 못 하면 산적이 몰려오는 쪽으로 총구가 늦게 따라가서 그대로 맞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조준을 이동에 맡기는 것입니다. 가려는 방향으로만 총구가 따라온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다 보면, 등 뒤에서 다가온 산적에게 죽습니다. 이동은 안전한 쪽으로, 조준은 위험한 쪽으로 두는 것이 기본입니다.
총알 한 발과 벽돌 장벽
또 하나 몸에 익혀야 할 것이 발사 제한입니다. 화면에 내 총알이 한 번에 여럿 떠 있을 수 없습니다. 쏜 총알이 무언가에 맞거나 화면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는 다음 발이 안 나갑니다. 그래서 아무 데나 갈기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 총이 안 나가는 상황이 생깁니다. 이 시절 게임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던 제약인데, 셰리프에서는 이게 곧바로 목숨과 직결됩니다.
여기에 화면 안에 있는 벽돌 장벽이 얽힙니다. 보안관 주변을 점 단위 벽돌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 벽돌은 산적의 총알을 막아 주는 방패이자 내 총알도 막아 버리는 장애물입니다. 총을 맞으면 벽돌이 조금씩 깎여 나가고, 그렇게 뚫린 구멍으로 총알이 오갑니다.
여기서 요령이 나옵니다. 벽돌을 마구 쏴서 사방을 뚫어 놓으면 시야는 트이지만 나도 그만큼 무방비가 됩니다. 반대로 한 방향만 골라서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을 통로 삼아 산적을 하나씩 처리하면서 나머지 방향은 벽돌로 막아 두는 쪽이 오래 삽니다. 벽돌을 자원으로 보고 아껴 쓰는 감각이 이 게임의 실력입니다.
판이 진행될수록 조여드는 압박
산적들은 화면 바깥 테두리를 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안쪽으로 파고들 틈을 노립니다. 한 마리씩 보면 위협적이지 않지만, 여럿이 동시에 다른 방향에서 들어오기 시작하면 총알 한 발 제한 때문에 순식간에 처리가 밀립니다. 판이 올라갈수록 수가 늘고 움직임이 빨라져서, 후반에는 안전한 방향이 사실상 사라집니다.
난이도가 튀는 지점은 산적이 사방에서 동시에 진입하는 순간입니다. 이때 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으면 어느 쪽에서 오는 총알이든 다 맞게 됩니다. 오히려 한쪽 구석으로 붙어서 신경 써야 할 방향의 수를 줄이는 것이 정석입니다. 노려야 할 각도가 줄어들면 총알 한 발 제한도 훨씬 견딜 만해집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소리입니다. 이 시절 기판이 낼 수 있는 소리는 몇 가지 안 되는데, 셰리프는 그 몇 안 되는 소리로 서부극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총소리와 산적이 쓰러지는 소리, 그리고 배경으로 흐르는 짧은 곡조가 화면보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닌텐도가 오락실에 있던 시절
닌텐도는 흔히 가정용 게임기 회사로 기억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오락실 기계를 만들어 파는 회사이기도 했습니다. 셰리프는 그 시기의 작품이고, 이 게임을 만든 인력과 경험이 곧바로 뒤이은 오락실 히트작들로 이어집니다. 이 게임이 나온 이듬해와 그 이듬해에 나온 닌텐도 오락실 게임들이 회사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셰리프는 북미에서 다른 회사에 라이선스되어 다른 제목으로도 돌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이렇게 한 게임이 지역마다 다른 회사 이름과 다른 제목으로 유통되는 일이 흔했고, 그래서 같은 게임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한국 오락실 기준으로 보면 이 게임은 세대가 한참 앞섭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오락실에 다닌 사람이라면 실물 기계를 본 기억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 브라우저에서 설치 없이 바로 켜서 몇 판 해 보면, 화면이 아무리 단순해도 이동과 조준을 분리한 조작이 얼마나 재미있는 발상이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쓰이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