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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소피아 (Sofia) · 1987 · Dem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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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이름만 남고 기억은 흐려진 MSX 한 장

8비트 시절 MSX 소프트 목록을 훑다 보면, 표지 그림도 기억나지 않고 잡지 광고도 본 적 없는데 제목만 낯설지 않은 게임이 꼭 몇 개씩 나옵니다. 소피아도 그런 축에 듭니다. 대작 목록에는 한 번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오락실 기판으로 나온 것도 아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앞 컴퓨터 학원이나 아는 형 집 MSX에 우연히 꽂혀 있던 테이프로나 접했을 법한 물건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게임을 다시 켜 보는 일은, 잘 만든 명작을 복습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첫 화면을 마주하고, 십자키와 버튼 하나로 이게 무슨 게임인지 스스로 알아내는 과정 자체가 게임의 절반이 됩니다.

소피아(Sofia)는 일본 소프트 회사 뎀파가 MSX용으로 내놓은 액션 게임입니다. 화려한 연출이나 긴 데모 없이 곧장 본편으로 들어가고, 화면 안의 캐릭터를 움직여 적과 지형을 헤쳐 나가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요즘 게임처럼 튜토리얼이 친절하게 손을 잡아 주지 않으므로, 처음 몇 판은 조작을 확인하는 데 쓴다고 생각하는 편이 마음이 편합니다.

소피아 액션 게임 화면 1 - MSX (1987)

처음 켰을 때 무엇부터 하면 되나

8비트 시절 게임을 처음 만질 때의 순서는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먼저 타이틀 화면에서 스페이스바나 버튼을 눌러 게임을 시작하고, 캐릭터가 나오면 좌우로 한 번씩 움직여 이동 속도를 몸에 익힙니다. 그다음 버튼을 눌러 무엇이 나가는지 봅니다. 공격이 나가면 사격이나 타격 계열이고, 아무 일도 없으면 점프거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버튼입니다. MSX는 버튼이 둘뿐인 기종이라 조작 체계가 복잡할 수 없습니다. 이 확인만 끝나면 나머지는 전부 반복 학습입니다.

다음으로 볼 것은 화면 가장자리와 상단 표시입니다. 8비트 게임은 정보 표시 공간이 좁아서 점수, 남은 목숨, 그리고 게임마다 다른 한두 가지 수치를 아주 작게 붙여 놓습니다. 그 수치가 줄어드는 순간이 언제인지를 보면 이 게임이 무엇을 위험으로 삼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적에게 닿을 때 줄어드는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줄어드는지, 특정 지형에 들어가면 줄어드는지에 따라 플레이 방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초보가 가장 많이 죽는 이유는 대개 욕심입니다. 8비트 액션은 화면 스크롤이 느리고 캐릭터의 관성이 적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밀고 나가는 것보다 한 화면에서 적이 나오는 순서를 외우고 안전한 자리를 잡는 쪽이 훨씬 오래 삽니다. 한 구간을 처음 통과할 때는 무리해서 뚫지 말고, 죽더라도 그 구간의 배치를 눈에 담는다는 생각으로 몇 번 반복하는 편이 결국 빠릅니다.

소피아 액션 게임 화면 2 - MSX (1987)

뎀파라는 회사

뎀파는 1980년대 일본에서 게임 잡지와 소프트를 함께 다루던 곳으로, MSX와 PC-8801 같은 8비트 기종용 소프트를 여러 편 내놓았습니다. 당시 일본 소프트 시장은 지금처럼 몇몇 대형 회사가 판을 나눠 갖는 구조가 아니었고, 잡지사, 출판사, 소규모 개발팀이 저마다 소프트를 만들어 파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완성도의 편차가 크고, 대신 아이디어의 폭은 아주 넓었습니다. 한 사람이나 서너 명이 몇 달 만에 만들어 낸 게임이 그대로 상자에 담겨 나가던 시절이라, 지금 다시 보면 조악하다 싶은 부분과 의외로 영리한 부분이 한 게임 안에 나란히 들어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소피아 역시 그런 시대의 산물로 보는 편이 이해가 쉽습니다. 대형 회사의 간판작처럼 다듬어진 맛을 기대하기보다, 그 시절 개발자가 8비트라는 좁은 그릇 안에서 무엇을 해 보려 했는지를 읽어 내는 재미로 접근하면 훨씬 볼 것이 많습니다.

MSX라는 기종의 사정

MSX는 여러 회사가 같은 규격으로 컴퓨터를 만들어 팔던 8비트 기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우 아이큐 시리즈를 비롯해 여러 모델이 나왔고, 1980년대 후반 학생들에게는 게임기와 컴퓨터의 경계에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오락실 기판에 비하면 처리 능력이 한참 떨어져서, 화면에 적이 여러 마리 나오면 눈에 띄게 느려지고 스크롤도 부드럽지 않습니다.

그 제약은 게임 설계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적을 잔뜩 뿌려 놓고 물량으로 압박하는 대신, 적은 수의 적을 정확한 위치에 배치해 놓고 플레이어가 그 배치를 외우게 만드는 쪽으로 갑니다. 화면 전환도 부드러운 스크롤 대신 한 화면씩 넘어가는 방식을 쓰는 게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MSX 액션 게임은 대체로 반사신경보다 기억력과 침착함을 요구합니다. 소피아를 할 때도 손이 빠른 사람보다 같은 구간을 지겹도록 반복하며 배치를 외우는 사람이 더 멀리 갑니다.

지금 다시 해 볼 때의 자세

무명작을 지금 다시 켤 때 가장 좋은 태도는 기대치를 명작 기준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이 게임들은 당시에도 몇백 개씩 쏟아지던 소프트 중 하나였고,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해 그 기종을 가진 사람에게 몇 주 동안 즐길 거리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 목적에 비추어 보면 8비트 무명작들은 대체로 제 몫을 합니다.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점도 이런 게임에는 특히 잘 맞습니다. 예전 같으면 실기와 테이프나 디스크를 구해야만 확인할 수 있던 것을, 이제는 화면을 열고 버튼 몇 번 눌러 보는 것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십 분쯤 해 보고 취향이 아니면 닫으면 그만이고, 손에 붙으면 그날 저녁을 통째로 쓸 수도 있습니다. 사라질 뻔한 소프트 목록의 한 줄이 이렇게라도 다시 돌아가고 있다는 점 자체가, 8비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꽤 반가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