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서퍼
실버 서퍼 (Silver Surfer USA) · 1990 · Arca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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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게임의 대명사
패미컴에서 가장 어려운 게임을 꼽는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주인공이 무엇에 닿아도 즉사하는데, 그 닿는 대상에 배경의 벽과 기둥까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적의 탄뿐 아니라 화면을 채운 구조물 전부가 죽음의 원인이 됩니다.
게다가 주인공 캐릭터의 판정 범위가 보드까지 포함해 넓게 잡혀 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스쳐 지나간 것 같은데도 죽습니다. 반면 음악은 대단히 훌륭해서, 이 게임을 두고 "음악만 좋고 나머지는 벌"이라는 농담이 오랫동안 따라다녔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실버 서퍼(Silver Surfer)는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를 소재로 한 슈팅 게임입니다. 은빛 서프보드를 탄 주인공이 여러 행성과 시설을 돌며 적을 물리치고 보스를 쓰러뜨립니다. 특이한 점은 화면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테이지에 따라 위로 스크롤하는 종스크롤 구간과 옆으로 흐르는 횡스크롤 구간이 번갈아 나옵니다.
스테이지 선택은 자유롭습니다. 여러 행성 중 원하는 곳을 골라 들어갈 수 있고, 각 행성마다 여러 구역을 돌파해 보스를 잡아야 합니다. 무기는 아이템으로 강화되며, 앞으로 곧게 나가는 기본탄에서 여러 방향으로 퍼지는 형태로 바뀝니다.
무엇이 그렇게 어려운가
첫째는 앞서 말한 지형 충돌입니다. 대부분의 슈팅 게임에서 배경은 그림일 뿐이지만 이 게임에서는 아닙니다. 통로를 지날 때 벽에 살짝 닿기만 해도 그 자리에서 목숨 하나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사격보다 이동에 훨씬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둘째는 파워업 유지입니다. 무기를 강화해 두어도 한 번 죽으면 초기 상태로 돌아갑니다. 강화된 상태로는 넘길 만한 구간이 기본 무기로는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곳이 여럿 있어서, 한 번 죽기 시작하면 계속 죽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셋째는 화면 밀도입니다. 적, 적탄, 지형, 아이템이 한꺼번에 나오는데 색이 비슷해서 무엇이 위험한지 순간적으로 구분이 안 됩니다.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무엇에 죽었는지조차 모르고 목숨이 줄어듭니다.
그래도 넘기는 요령
요령의 절반은 마음가짐입니다. 이 게임은 즉흥적인 반사신경으로 밀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 구간을 외워서 지나가는 종류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어떤 지형이 나오는지 기억하고 그 자리에 미리 가 있는 식으로 접근하면 체감 난도가 눈에 띄게 내려갑니다.
화면 가장자리에 붙어 다니는 습관도 도움이 됩니다. 중앙은 사방에서 적과 지형이 몰려오는 자리라 피할 공간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반대로 가장자리는 한쪽 위험이 줄어들어 판단할 시간이 조금 더 생깁니다.
무기는 퍼지는 형태를 우선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화력이 높아도 한 줄로만 나가는 무기는 지형을 피하며 조준하기가 어렵습니다. 넓게 퍼지는 무기를 유지하면 사격에 쏟는 집중을 이동 쪽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원작과 게임 사이
원작 만화의 실버 서퍼는 우주를 자유로이 떠도는 강력한 존재입니다. 게임 속에서도 이 설정을 살려 자유 비행하는 감각을 표현하려 한 흔적이 보입니다. 위아래 어디로든 빠르게 움직이고, 스테이지가 종횡을 오가는 구성도 그런 시도의 일부로 보입니다.
문제는 그 자유로움이 하드웨어의 제약과 부딪혔다는 점입니다. 넓게 그린 배경 안에서 큰 캐릭터가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판정을 느슨하게 잡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반대로 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게임은 완성도의 문제와는 별개로, 잘 만들어진 음악과 극단적인 난도라는 두 가지로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한 판만 버텨 보겠다는 마음으로 붙잡으면 의외로 오래 놓지 못하게 되는 묘한 힘도 있습니다.
국내에서의 기억
국내에서는 정식 발매보다 복사 카트리지를 통해 접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마블 히어로라는 원작을 아는 사람이 드물던 때라, 대부분은 은색 사람이 보드를 타고 날아다니는 게임 정도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첫 판을 넘기지 못하고 카트리지를 뽑았습니다.
지금 다시 잡아 보면 그때 왜 그렇게 죽었는지 이유가 또렷하게 보입니다. 배경을 그림으로 여긴 것이 첫 번째 오해였고, 무기를 잃은 상태로 계속 밀어붙인 것이 두 번째였습니다. 구간을 외우고 가장자리를 쓰는 두 가지만 지켜도 처음 보던 화면보다 훨씬 오래 버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