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시티 2000 유럽판
심시티 2000 (Sim City 2000 E Trashman) · 2003 · Electronic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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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위의 시장실
도시 하나를 통째로 굴리는 게임을 휴대용 기기에 넣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모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켜 보면 됩니다. 빈 땅에 도로를 긋고 전선을 잇고 주거·상업·공업 구역을 칠하면, 몇 분 뒤 그 위에 집이 서고 사람이 들어옵니다. 화면은 작지만 도시가 자라는 감각은 그대로입니다.
심시티 2000 유럽판(Sim City 2000)은 게임보이 어드밴스로 이식된 도시 경영 시뮬레이션입니다. 1993년 PC판이 원작이고, 쿼터뷰 시점과 지하층 개념을 처음 들여온 그 버전을 휴대용에 맞게 줄여 옮겼습니다.
구역과 인프라
기본 흐름은 단순합니다. 주거 구역을 깔면 사람이 오고, 상업 구역이 있어야 그 사람들이 돈을 쓰고, 공업 구역이 있어야 일자리가 생깁니다. 셋 중 하나만 모자라도 도시가 멈추기 때문에 비율을 맞추는 게 첫 번째 숙제입니다.
전기와 물이 그다음입니다. 발전소를 짓고 전선을 이어야 건물이 돌아가고, 상수도관을 지하에 깔아야 인구가 일정 수준을 넘습니다. 이 지하 배관이 2000의 상징 같은 요소인데, 지상만 보고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가 물이 안 닿아 도시가 말라 죽는 경험을 한 번쯤 하게 됩니다.
세금과 재난
돈은 세금으로 들어옵니다. 세율을 올리면 당장은 여유가 생기지만 사람들이 떠나고, 낮추면 인구는 늘지만 예산이 마릅니다. 여기에 경찰서, 소방서, 학교, 병원 유지비가 매년 빠져나가서, 도시가 커질수록 적자를 막는 일이 도시를 넓히는 일보다 어려워집니다.
재난도 있습니다. 화재, 토네이도, 지진, 비행기 추락 같은 것들이 예고 없이 도시를 헤집습니다. 소방서를 미리 촘촘히 깔아 두지 않으면 불이 한 구역을 통째로 태우고 나서야 진화됩니다. 재난을 껐다 켰다 할 수 있어서, 느긋하게 도시를 키우고 싶으면 꺼 두고 시작하는 편이 낫습니다.
작은 화면의 한계와 요령
이식판이라 지도 크기와 건물 종류가 원작보다 줄었고, 한 화면에 보이는 범위가 좁아 스크롤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도시를 넓게 벌리기보다 한 덩어리를 촘촘히 채우고 옆으로 확장하는 편이 관리하기 쉽습니다.
도로 대신 지하철을, 발전소는 오염이 적은 쪽을 골라 두면 후반이 편해집니다. 인구가 늘면 예전에 지은 석탄 발전소가 도시 한복판에서 공해를 뿜는 애물단지가 되어 있는데, 처음부터 외곽 구석에 몰아 두는 습관을 들이면 나중에 갈아엎을 일이 줄어듭니다. 목표도 끝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인구를 늘리는 데 몰두하든 적자 없는 작은 도시를 다듬든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게 이 게임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