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노이드
아르카노이드 (Arkanoid World) · 1986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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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뒤에 우주가 있었습니다
동전을 넣으면 뜬금없이 우주선 한 대가 화면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옵니다. 벽돌을 깨는 게임에 왜 우주선이 나오는지 의아하지만, 이 게임에는 나름의 설정이 붙어 있습니다. 모함 아르카노이드가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파괴되고 마지막으로 탈출한 소형 전투정 바우스가 차원의 틈을 빠져나가려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화면 위를 가득 채운 벽돌은 그 틈을 막고 있는 벽이고, 서른세 번째 판에서 기다리는 것은 모아이를 닮은 거대한 얼굴입니다.
벽돌깨기(Arkanoid)는 화면 아래에서 좌우로 움직이는 패들로 공을 튕겨 위쪽에 쌓인 벽돌을 모두 부수는 게임입니다. 공을 놓치면 잔기가 줄고, 벽돌을 전부 없애면 다음 판으로 넘어갑니다. 규칙은 이 한 줄이 전부인데, 여기에 캡슐과 특수 벽돌과 방해 캐릭터가 얹히면서 판마다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손끝으로 굴리는 다이얼
이 게임의 감각은 조작 장치에서 나옵니다. 레버가 아니라 손바닥으로 굴리는 다이얼로 패들을 움직이기 때문에, 화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한 번에 튕겨 보낼 수도 있고 픽셀 단위로 살살 밀 수도 있습니다.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미리 읽고 손목을 얼마나 돌릴지 결정하는 것이 실력의 대부분입니다.
반사각도 중요합니다. 패들 한가운데로 받으면 공이 곧게 튀어 오르고, 끝자락으로 받으면 각이 크게 꺾입니다. 남은 벽돌이 구석에 한 줄만 걸려 있을 때는 일부러 패들 끝에 맞혀 각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각도 조절을 몸이 기억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게임이 달라집니다.
캡슐 하나에 판이 뒤집힙니다
벽돌을 깨면 알파벳이 적힌 캡슐이 천천히 떨어집니다. 레이저를 달아 패들에서 직접 쏘게 해 주는 것, 패들을 두 배로 늘려 주는 것, 공을 패들에 붙였다가 원하는 순간에 놓아 주는 것, 공을 느리게 만드는 것, 공을 셋으로 쪼개는 것,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문을 열어 주는 것, 잔기를 하나 늘려 주는 것이 있습니다.
문제는 캡슐이 늘 반가운 것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공 세 개가 동시에 날아다니는 상태는 화력이 세 배가 되지만 눈이 따라가지 못하면 한 번에 다 잃습니다. 반대로 공을 붙잡을 수 있는 캡슐을 먹으면 마음껏 조준할 수 있어, 까다로운 배치도 차분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캡슐을 먹고 어떤 캡슐을 피할지 고르는 것도 공략의 일부입니다.
은색과 금색, 그리고 방해꾼
모든 벽돌이 한 방에 깨지지는 않습니다. 은색 벽돌은 여러 번 때려야 하고, 판이 뒤로 갈수록 필요한 횟수가 늘어납니다. 금색 벽돌은 아예 부술 수 없어서 공의 궤도를 막는 장애물로만 존재합니다. 이런 벽돌이 통로처럼 배치된 판에서는 공을 어디로 흘려보낼지가 곧 해법이 됩니다.
여기에 위쪽에서 내려오는 방해 캐릭터가 끼어듭니다. 삼각뿔이나 구슬 모양을 한 이 물체들은 공에 맞으면 사라지지만, 살아 있는 동안 공의 궤도를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 버립니다. 계산해 둔 각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 이 게임에서 가장 억울한 장면입니다.
오락실이 기억하는 이름
국내 오락실에서 이 게임은 대개 벽돌깨기라고 불렸습니다. 벽돌을 부순다는 형식 자체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지만, 캡슐과 보스와 배경 이야기를 붙여 하나의 완성된 게임으로 만든 것은 이 작품입니다. 이후 등장한 수많은 벽돌깨기 게임이 이 틀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인기가 워낙 높아 이듬해에는 새로운 판과 새로운 캡슐을 담은 속편이 나왔고, 가정용 기기와 컴퓨터로도 셀 수 없이 이식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잡아도 손목의 각도 하나로 판이 풀리고 막히는 감각은 그대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