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버너
애프터 버너 (After Burner) · 1987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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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가 통째로 돌아가던 기계
오락실 한구석에 다른 기계보다 두 배쯤 자리를 차지하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앉으면 안전바가 내려오고, 조종간을 꺾으면 좌석이 실제로 기울었습니다. 화면 속 전투기가 몸을 굴리면 내 몸도 같이 돌아갔습니다. 한 판 값이 다른 게임보다 비쌌는데도 사람이 붙어 있었고, 뒤에서 구경하는 재미도 못지않았습니다.
이 게임은 애프터 버너(After Burner)입니다. 세가가 만든 3인칭 시점 체감형 슈팅으로, 전투기를 몰고 화면 안쪽으로 끝없이 날아가며 마주 오는 적기와 미사일을 상대합니다. 시점이 기체 뒤를 따라가기 때문에 스테이지가 좌우로 흐르는 게 아니라 정면에서 계속 쏟아져 들어옵니다. 이 구도 자체가 당시로서는 낯설고 강렬했습니다.
기총과 미사일, 그리고 가속
무장은 두 가지입니다. 기관포는 무제한으로 쏠 수 있지만 위력이 약하고, 유도 미사일은 조준이 걸린 적을 확실하게 떨어뜨리는 대신 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화면에 여러 대가 동시에 들어오면 조준이 겹쳐 잡히기 때문에, 한 번에 여러 발을 날려 정리하는 손맛이 좋았습니다.
이름이 된 애프터버너는 순간 가속입니다. 스로틀을 끝까지 밀면 화면이 늘어나듯 빨라지는데, 빠를수록 지나가는 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날아오는 미사일을 피할 여유도 함께 줄어듭니다. 반대로 속도를 줄이면 회피는 편해지지만 적과 마주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이 조절이 이 게임의 유일하면서 가장 중요한 판단이었습니다.
적 미사일은 흰 연기를 끌며 따라옵니다. 정면으로 다가올 때 기체를 크게 굴려 옆으로 빠지면 스치듯 지나가는데, 그 순간의 연출이 좋아서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중간에 끼어드는 급유기
스테이지를 몇 개 넘기면 공중 급유 구간이 나옵니다. 커다란 수송기가 앞에 떠 있고, 그 아래로 자세를 맞춰 붙으면 미사일이 다시 채워집니다. 적이 나오지 않는 구간이라 쉬어 가는 대목 같지만, 여기서 자세를 못 맞추면 다음 스테이지를 기관포만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항공모함에서 사출되며 시작하는 첫 장면, 협곡 사이를 스치듯 지나가는 저공 비행 구간처럼 화면이 크게 바뀌는 대목들이 중간중간 배치돼 있어서, 계속 같은 하늘만 보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속도 자체가 재미였던 게임
이 게임에는 복잡한 규칙이 거의 없습니다. 피하고, 쏘고, 속도를 조절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속도감 자체를 게임의 내용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스프라이트를 확대하고 축소해 원근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 화면 가득 쓰였고, 적기가 점처럼 나타나 순식간에 커지며 옆을 스쳐 가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음악도 이 게임의 인상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륙과 동시에 시작되는 곡이 속도와 맞물려 흘러서, 조종간을 잡고 있으면 실제로 비행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곧이어 나온 후속작이 구성을 더 다듬으면서 이 기계는 오락실의 간판 자리를 오래 지켰고, 지금도 체감형 아케이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