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인법첩
이가 인법첩 (Iga Ninpouten 1) · 1985 · Casio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카시오가 MSX 시장에 내놓던 초기 카트리지들은 하나같이 작았습니다. 용량이 작으니 화면도 소박하고, 규칙도 몇 줄이면 설명이 끝납니다. 그런데 그 작은 그릇에 닌자를 담아 놓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화면 몇 장 분량밖에 안 되는 게임인데도, 몸을 숨기고 튀어나오는 닌자라는 소재 하나로 긴장이 생깁니다.
이가 인법첩(Iga Ninpouten)은 닌자를 조종해 화면을 돌아다니며 적을 상대하는 MSX용 액션 게임입니다. 제목의 이가는 일본에서 닌자의 본거지로 통하는 지명이고, 인법첩은 닌자의 술법을 적은 책이라는 뜻입니다. 이 계열의 이름을 단 작품답게, 뛰고 던지고 피하는 동작으로 한 판이 굴러갑니다. 이후에 만월성을 무대로 한 후속작도 나왔습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조작은 단순합니다. 레버 혹은 키보드로 좌우 이동과 점프를 하고, 버튼으로 공격합니다. 화면에는 적이 정해진 자리와 정해진 방식으로 나타나고, 이쪽은 그 규칙을 읽어 가며 빈틈에 파고들어야 합니다. 목숨은 넉넉하지 않아서, 한 번의 실수가 그대로 잔기 하나로 이어집니다.
이 시절 MSX 액션 게임이 대체로 그렇듯, 이 게임의 재미도 반사신경보다 암기 쪽에 있습니다. 처음 한두 판은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오는지 몰라 계속 당합니다. 그러다 적의 등장 순서와 움직이는 궤도가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같은 구간을 훨씬 매끄럽게 지나가게 됩니다. 판을 거듭할수록 손이 아니라 기억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한 판을 넘기고 나면 적의 수와 속도가 올라갑니다. 새로운 규칙을 자꾸 얹는 대신, 이미 있는 요소를 더 촘촘하게 배치해 난이도를 올리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앞부분을 안정적으로 통과하는 실력이 붙으면 뒤로 가는 속도도 함께 빨라집니다.
처음 하는 사람을 위한 요령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은 점프의 무게감입니다. 이 시기 MSX 게임의 점프는 대체로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뛰기 전에 착지 지점을 정해 두지 않으면, 뛰는 도중에 적이 다가와도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뛰어서 피하기보다 뛰지 않고 기다렸다가 지나가는 편이 안전한 상황이 많습니다.
두 번째는 공격 거리를 몸으로 재는 일입니다. 적에게 유효한 거리와 이쪽이 맞는 거리가 종이 한 장 차이라, 몇 번 부딪혀 보면서 이 정도까지는 붙어도 되는구나 하는 감각을 잡아야 합니다. 이것만 잡히면 무턱대고 물러서다가 구석에 몰리는 실수가 크게 줄어듭니다.
세 번째는 화면 끝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좁은 화면에서는 벽을 등지는 순간 피할 방향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여유가 있을 때 미리 화면 가운데 쪽으로 자리를 잡아 두면, 갑자기 적이 늘어나도 빠져나갈 길이 남습니다.
그 시절 MSX와 카시오
MSX는 여러 회사가 같은 규격으로 컴퓨터를 만들어 팔던 체계였고, 카시오도 그중 한 곳이었습니다. 카시오는 값을 낮춘 보급형 기종을 앞세웠고, 그에 맞춰 소프트웨어도 용량이 작고 값이 싼 카트리지를 여러 개 내놓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 게임도 그런 계열에 속합니다. 큰 회사의 대작과 겨루는 물건이 아니라, 기계를 산 사람이 부담 없이 하나 더 집어 드는 자리에 놓인 상품이었습니다.
용량이 작다는 사실은 게임의 성격을 그대로 결정합니다. 긴 이야기나 방대한 지도를 넣을 수 없으니, 짧은 규칙을 잘 다듬어 반복해서 즐기게 만들어야 합니다. 화면 하나를 알차게 쓰고, 난이도 곡선으로 시간을 버는 방식입니다. 지금 보면 단출하지만, 당시의 제약 안에서는 합리적인 설계였습니다.
한국에서의 MSX와 이 게임
한국에서 MSX는 오락실이 아니라 집과 문방구 근처에서 만나는 기계였습니다. 국내에서도 같은 규격의 컴퓨터가 나왔고, 카트리지와 테이프가 이런저런 경로로 돌아다녔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소품 액션 게임들은 대체로 정식 경로가 아니라 복사본이나 여러 게임을 묶은 형태로 손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런 작품은 제목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보다, 화면을 보면 아 그거 하고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닌자가 나오는 MSX 게임은 여럿이었고 그 사이에서 이름이 섞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다시 켜 보면 규모는 작지만, 초기 MSX 액션 게임이 어떤 손맛으로 사람을 붙들었는지는 몇 판만 해 봐도 금세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