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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리온 북미판

질리온 (북미판) (Zillion USA v1 1) · 1987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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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 없이는 못 깨는 게임

이 게임을 처음 켠 사람은 대개 얼마 못 가 벽에 부딪힙니다. 통로를 달려 문 앞에 서면 암호를 넣으라는 화면이 나오는데, 그 암호를 게임이 알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마다 놓인 단말기를 뒤져 숫자 조각을 직접 모아야 하고, 그걸 기억하지 못하면 문은 끝까지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제대로 즐긴 사람들은 화면 옆에 공책을 펴 놓고 있었습니다. 어느 방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어느 문이 아직 잠겨 있는지 손으로 적어 가며 기지의 지도를 완성해 가는 과정 자체가 이 게임의 본체입니다.

질리온 북미판 어드벤처 게임 화면 1 - 마스터 시스템 (1987)

어떤 게임인가

질리온 북미판(Zillion)은 세가 마스터시스템용 액션 어드벤처의 해외 발매 버전입니다. 특수부대원 JJ가 노자 군단의 지하 기지에 홀로 침투해 동료를 구하고 기지를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옆에서 본 화면으로 통로와 방을 오가며, 레이저 총으로 경비 로봇을 쏘고 단말기를 조사해 정보를 캡니다. 액션 실력만으로 밀어붙일 수 없고, 탐색과 기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구조입니다.

질리온 북미판 어드벤처 게임 화면 2 - 마스터 시스템 (1987)

북미판이 다른 점

일본판과 뼈대는 같지만 세부에서 손이 들어갔습니다. 화면에 표시되는 안내와 문구가 영어로 바뀌었고, 원작 애니메이션을 모르는 해외 이용자를 위해 도입부 설명이 조금 다르게 다듬어졌습니다.

난이도 조정도 있었습니다. 일본판보다 초반 진입이 완만해지도록 손본 부분이 있어서, 처음 접하는 사람이 시작하기에는 이쪽이 조금 낫다는 이야기가 흔합니다. 다만 기지의 구조와 암호 시스템이라는 핵심은 그대로라, 결국 공책은 필요합니다.

기지를 파고드는 순서

초반에는 무리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입구 근처 방부터 하나씩 열어 회복 아이템과 열쇠 카드를 확보하고, 총의 성능을 올려 주는 부품을 먼저 챙기면 이후 전투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경비 로봇은 정해진 경로로 순찰하므로, 마주치자마자 쏘기보다 통로 모퉁이에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편이 안전합니다. 총알과 체력을 아끼는 습관이 후반부의 생존을 결정합니다.

붙잡혀 있는 동료를 구출하면 조작할 수 있는 캐릭터가 늘어납니다. 한 명이 쓰러져도 남은 인원으로 이어 갈 수 있으니, 위험한 구역 정찰은 여유가 있을 때 미리 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8비트기에서 만난 잠입의 맛

1980년대 후반 가정용 8비트기에서 이 정도로 탐색과 잠입에 무게를 둔 게임은 드물었습니다. 쏘고 달리는 액션이 주류이던 시기에, 정보를 모아 문을 여는 구조를 전면에 내세운 시도는 지금 봐도 뚜렷한 개성으로 남습니다.

국내에서는 삼성 겜보이용 카트리지로 접한 사람이 많았고, 영문 화면 때문에 애를 먹으면서도 암호를 맞춰 문이 열리는 순간의 쾌감으로 끝까지 붙잡고 있던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