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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러

칠러 (Chiller USA Unl) · 1990 · American Game Cartrid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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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허가 없이 나온 공포 사격 게임

패미컴 게임 중에는 닌텐도의 승인 도장을 받지 않고 나온 물건이 꽤 있었습니다. 이 게임은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사례입니다. 내용이 워낙 잔혹해서 정식 라이선스로는 통과될 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문실과 시체가 배경으로 깔리고 화면 속 대상을 쏘아 맞히는 게임이니, 당시 닌텐도가 내걸던 가정용 콘텐츠 기준과는 애초에 맞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비공식 카트리지 형태로 유통됐습니다. 회로에 정품 인증 칩을 우회하는 장치를 넣어 본체에서 돌아가게 만든 물건이었고, 정규 유통망보다는 잡화점이나 통신 판매 쪽에서 팔렸습니다. 패미컴 시대의 뒷골목을 보여 주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칠러 슈팅 게임 화면 1 - 패미컴 (1990)

화면 속 표적을 쏘아 맞히는 게임

칠러(Chiller)는 1986년 오락실에 나온 총기 사격 게임을 패미컴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원작은 미국의 엑시디가 만들었고, 패미컴판은 그것을 비공식으로 이식한 것입니다. 플레이 방식은 단순합니다. 화면 하나가 정지된 그림처럼 제시되고, 그 안에 있는 표적을 조준해 쏘면 됩니다. 화면 위쪽 계기가 이번 화면에서 맞혀야 할 목표 수를 알려 주고, 아래쪽 시간이 다 되기 전에 그 수를 채워야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조작은 광선총 주변기기를 쓰거나 일반 패드로 조준점을 움직여 쏘는 두 가지 방식을 지원합니다. 브라우저에서는 패드 조작 쪽이 자연스럽고, 방향키로 조준점을 옮기고 버튼으로 발사하면 됩니다. 광선총 방식에 비하면 조준이 느려서 시간 관리가 훨씬 빠듯해집니다.

칠러 슈팅 게임 화면 2 - 패미컴 (1990)

네 개의 무대

무대는 크게 네 장면으로 구성됩니다. 고문 도구가 늘어선 방, 사람을 눕혀 놓는 형틀이 있는 방, 복도, 그리고 묘지입니다. 각 장면은 배경이 통째로 하나의 그림이고, 그 안의 여러 부분이 각각 맞힐 수 있는 표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게임의 특징은 표적이 화면 곳곳에 숨어 있다는 점입니다. 명백히 움직이는 것만 노려서는 목표 수를 채우기 어렵고, 배경처럼 보이는 물건에도 반응하는 부분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하면 시간만 흘리고 실패하기 쉽습니다.

요령은 화면을 훑는 순서를 정해 두는 것입니다.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지그재그로 쓸면서 반응하는 지점을 기억해 두면, 두 번째 시도부터는 시간이 남습니다. 이 게임은 한 판을 외워서 반복하는 성격이 강해서, 첫 시도의 실패를 정보 수집으로 쓰는 편이 낫습니다.

칠러 슈팅 게임 화면 3 - 패미컴 (1990)

잔혹함 때문에 유명해진 게임

이 게임이 지금까지 이름이 남은 이유는 게임성보다 소재 때문입니다. 사람 형태의 대상을 쏘고, 맞히면 반응이 나오는 구성이 당시로서는 상당히 도발적이었습니다. 오락실판이 나왔을 때부터 논란이 있었고, 가정용으로 옮겨지면서 비판이 더 커졌습니다.

다만 8비트 하드웨어의 표현력이 지금 기준으로는 대단히 거칠어서, 실제로 화면을 보면 무엇이 그려진 것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부분도 많습니다.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단순하고 조악하다는 인상을 받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게임은 당시의 도덕 논쟁이 얼마나 기술적 한계 위에서 벌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난이도와 완성도

난이도는 낮지 않습니다. 조준 이동이 느린 데다 목표 수가 빠듯하게 잡혀 있어서, 화면 구조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거의 통과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어디를 쏘면 되는지 알고 나면 순식간에 끝납니다. 기술의 성장이 아니라 정보의 축적으로 넘어가는 구조입니다.

완성도 면에서는 비공식 이식작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림이 투박하고, 소리도 단조롭고, 화면 사이의 연출도 거의 없습니다. 원작 오락실판이 가지고 있던 분위기와 밀도를 8비트로 옮기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한국에서의 자리

한국에서 이 게임을 정식으로 만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비공식 카트리지였던 데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국내 유통망에 오를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당시 국내에 돌던 복사 카트리지나 여러 게임을 한 장에 담은 합팩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게임이 잔뜩 들어 있었고, 그런 경로로 화면을 본 사람은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별도 설치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로 켜 볼 수 있습니다. 오래 붙잡고 할 게임은 아니지만, 패미컴 시대에 이런 물건도 돌아다녔다는 것을 직접 확인해 보는 데는 몇 분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