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키노 센시 크로노 솔저
토키노 센시 크로노 솔저 (Toki no Senshi Chrono Soldier) · 1987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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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캡콤의 전장의 이리가 나온 뒤로, 오락실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에서 병사 하나가 총을 갈기며 위로 올라가는 게임이 쏟아졌습니다. 이 게임도 그 물결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손에 총이 없습니다. 주인공의 기본 공격은 짧은 사거리의 주먹질이고, 멀리 있는 것을 처리하려면 수량이 정해진 수류탄을 써야 합니다. 총이 없는 전장의 이리라는 발상이 이 게임의 성격을 전부 결정합니다.
토키노 센시 크로노 솔저(Toki no Senshi Chrono Soldier)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에서 주인공을 조종해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을 헤치고 나아가는 아케이드 액션 게임입니다. 8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며 원하는 방향으로 공격할 수 있고, 화면은 진행에 따라 흘러갑니다. 시간을 넘나드는 전사라는 설정답게 배경이 시대를 오가며 바뀝니다.
주먹이 기본 무기입니다
주인공의 주요 공격은 바라보는 방향으로 뻗는 짧은 에너지 파동입니다. 사거리가 매우 짧아서, 적이 화면 저편에 있을 때는 아무리 눌러도 닿지 않습니다. 적이 내 앞까지 오기를 기다렸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내질러야 합니다.
이 설계가 게임의 리듬을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총을 든 게임에서는 멀리서부터 적을 갈아 없애며 전진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여기서는 적이 사거리 안에 들어올 때까지 거리를 조절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깁니다. 전진하는 게임이라기보다 자리를 잡고 맞아 주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핵심 기술은 이동과 방향 전환입니다.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접근하는 적을 상대할 때, 한 방향으로 몰아 놓고 한 마리씩 처리할 수 있는 위치를 만드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벽이나 지형에 등을 붙여 뒤를 막고 앞만 상대하는 기본기가 여기서 크게 작동합니다.
수류탄은 아껴 쓰는 자원입니다
먼 거리를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수류탄입니다. 앞쪽으로 던져 터뜨리고, 폭발 범위 안에 있는 것들에 큰 피해를 줍니다. 대신 개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아무 때나 던질 수 없습니다.
초보자는 대개 적이 몰려오면 겁이 나서 수류탄부터 던지고, 정작 필요한 순간에 빈손이 됩니다. 잡몹은 최대한 주먹으로 처리하고, 수류탄은 주먹으로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을 위해 남겨 두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사거리가 긴 적이 자리를 잡고 나를 견제하는 상황이나, 좁은 길목에서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상황이 수류탄을 써야 할 때입니다.
수류탄이 남아 있는지를 늘 화면에서 확인하는 습관도 필요합니다. 남은 수량을 모르고 진행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던져지지 않아 그대로 죽는 것이 이 게임에서 가장 허무한 죽음입니다.
난이도가 어디서 튀는가
이런 구조의 게임에서 어려워지는 방식은 정해져 있습니다. 적의 수가 늘고, 사방에서 동시에 들어오고, 사거리가 긴 적이 섞입니다. 주먹의 사거리가 짧다는 약점이 이때 정면으로 드러납니다.
특히 좁은 길에서 앞뒤로 막히는 상황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게임에는 적을 밀치고 통과하는 수단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막다른 곳에 몰리면 목숨 하나를 그대로 내주게 됩니다. 좁은 구간에 들어가기 전에 뒤쪽이 비어 있는지, 물러설 공간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체력이 아니라 한 방에 죽는 구조라면 조심성이 곧 실력입니다. 점수를 욕심내 위험한 위치로 파고드는 것보다, 안전한 자리에서 확실하게 처리하며 나아가는 쪽이 결과적으로 더 멀리 갑니다.
세가와 그 시절 아케이드 사정
세가는 1980년대 후반 자체 기판을 여러 갈래로 굴리며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물건을 쏟아내던 시기였습니다. 대형 체감형 기계로 이름을 날리는 한편, 일반적인 업라이트 기계용 게임도 꾸준히 냈습니다. 이 게임은 후자에 속하고, 개발은 외부 개발사가 맡고 세가가 이름을 달아 유통한 형태입니다.
이런 구조는 당시 흔한 일이었습니다. 큰 회사가 자체 기판과 유통망을 갖추고, 작은 개발사가 그 기판 위에서 게임을 만들어 납품하는 방식입니다. 덕분에 기판 하나에 성격이 제각각인 게임들이 함께 올라갔고, 지금 목록을 보면 같은 회사 이름 아래에 전혀 다른 결의 작품들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같은 시기의 유명한 위에서 내려다보는 액션 게임들과 나란히 놓으면, 이 게임은 화력이 부족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총을 든 게임에 익숙한 손으로 잡으면 특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답답함이 이 게임의 성격이기도 합니다. 거리를 재고, 적을 한쪽으로 몰고, 정확한 순간에 내지르는 리듬에 적응하면 다른 게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긴장감이 생깁니다. 총으로 밀어붙이는 게임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는 게임을 하고 싶을 때 눌러 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