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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판타지 크로니클스

파이널 판타지 크로니클스: 파이널 판타지 IV (Final Fantasy Chronicles Final Fantasy Iv) · 2001 · Squ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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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의 명작을 한 장에 담다

플레이스테이션 후반기에는 이상한 유행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미 슈퍼패미컴에서 다 해본 게임을 다시 사게 만드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 합본만큼은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IV와 크로노 트리거, 90년대 전반기 일본 RPG의 정점이라 불리던 두 작품을 한 패키지에 묶어 놓았으니까요. 당시 이 두 게임을 정품으로 다 가지고 있던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래서 이 한 장은 "못 해본 명작을 드디어 해보는" 기회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건 새로 들어간 애니메이션 컷신입니다. 슈퍼패미컴 시절에는 도트로만 보던 장면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영상으로 다시 만들어져 앞뒤에 붙었습니다. 지금 보면 짧지만, 도트 그림만 알던 사람에게는 캐릭터가 처음으로 실제 얼굴을 얻은 순간이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크로니클스 RPG 게임 화면 1 - 플레이스테이션 (2001)

어떤 게임인가

파이널 판타지 크로니클스(Final Fantasy Chronicles)는 두 개의 턴제 RPG를 담은 모음집입니다. 지도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따라가고, 적을 만나면 화면이 전투로 전환되어 명령을 넣는 방식입니다. 어느 쪽을 고르든 수십 시간짜리 본격 RPG가 나오고, 두 게임은 서로 완전히 독립되어 있어 아무 쪽이나 먼저 시작해도 됩니다.

파이널 판타지 IV는 어둠의 기사 세실이 자신이 저지른 일을 뉘우치고 성기사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각 캐릭터에게 고정된 직업과 사연을 준 작품이라, 파티원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 자체가 줄거리가 됩니다. 크로노 트리거는 시간 여행이 축입니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세계의 파멸을 막는데, 한쪽 시대에서 한 일이 다른 시대의 풍경을 바꿔 놓는 구성이 지금 봐도 영리합니다.

파이널 판타지 크로니클스 RPG 게임 화면 2 - 플레이스테이션 (2001)

전투가 실시간으로 흐른다

두 게임 모두 액티브 타임 배틀을 씁니다. 턴제라고는 하지만 게이지가 실시간으로 차오르고, 다 찬 캐릭터부터 명령을 넣습니다. 메뉴를 열어 두고 고민하는 동안에도 적의 게이지는 계속 차기 때문에, 마법 목록을 뒤적이다가 얻어맞는 일이 흔합니다. 자주 쓰는 마법은 목록 위쪽에 오도록 습관을 들여 두면 훨씬 편합니다.

크로노 트리거는 여기에 연계기를 얹었습니다. 두 명이나 세 명이 동시에 기술을 쓰면 완전히 다른 합동기가 나가는데, 파티 조합에 따라 배울 수 있는 조합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같은 구간을 다른 멤버로 지나가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또 이 게임은 적과 마주쳐도 화면이 바뀌지 않습니다. 지도 위에서 그대로 싸우기 때문에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범위 기술이 몇 명을 맞히는지가 달라집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파이널 판타지 IV는 중반에 파티원이 갑자기 빠져나가는 일이 반복됩니다. 육성을 한두 명에게 몰아 두면 그 캐릭터가 이탈했을 때 곤란해지므로, 자주 쓰는 얼굴들을 골고루 데리고 다니는 편이 안전합니다. 뒷줄에 세운 캐릭터는 물리 피해를 덜 받는 대신 물리 공격력도 떨어지니, 마법사는 뒤, 전사는 앞이라는 기본을 지키기만 해도 체감 난이도가 크게 내려갑니다.

크로노 트리거는 오히려 헤매기 쉬운 쪽이 길찾기입니다. 시대를 넘나드는 문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서,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 놓치기 쉽습니다. 이럴 때는 마지막으로 이야기가 진행된 시대의 마을 사람들과 다시 말을 걸어 보는 것이 정석입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한 번 끝낸 뒤 이어서 다시 시작하는 기능이 있어, 다른 결말을 보러 가는 것이 정식 플레이 방식에 가깝습니다.

이 합본만의 자리

같은 시기에 나온 다른 이식본들과 견주면 이 판은 로딩이 다소 긴 편입니다. 원작이 카트리지였던 게임을 시디로 옮기다 보니 전투에 들어갈 때마다 짧은 기다림이 생겼습니다. 대신 그 대가로 얻은 것이 애니메이션과 각종 부가 자료였고, 무엇보다 두 게임을 한 번에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컸습니다.

국내에서는 두 작품 모두 정식 발매 시절보다 훨씬 나중에, 이런 합본을 통해 처음 접한 사람이 많습니다. 슈퍼패미컴을 갖지 못했던 세대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90년대 초 RPG를 뒤늦게 따라잡는 통로 역할을 했던 셈입니다. 지금 시작하는 사람에게도 순서는 같습니다. 짧고 밀도 높은 쪽을 원하면 크로노 트리거, 정통 판타지의 무게를 원하면 파이널 판타지 IV부터 잡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