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 스파이
퓨처 스파이 (Future Spy) · 1984 · Sega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1982년 세가의 잭슨은 오락실에 없던 그림을 들고 나왔습니다. 화면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고, 비행기가 앞뒤 좌우뿐 아니라 높낮이까지 가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기판이 남아돌던 시절, 세가는 같은 하드웨어에 다른 옷을 입혀 한 번 더 내보냈습니다. 이번에는 우주가 아니라 현대전이었고, 주인공은 우주선이 아니라 전투기였습니다.
퓨처 스파이(Future Spy)는 세가가 1984년에 내놓은 비스듬한 시점의 슈팅 게임입니다. 화면이 대각선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전투기를 몰고 나아가면서, 공중의 적과 지상의 목표물을 각각 다른 버튼으로 처리합니다. 잭슨 기판을 그대로 쓰는 개조 키트 형태로 나와서, 기존 잭슨 기계에 기판만 갈아 끼우면 이 게임이 되었습니다.
비스듬한 시점이라는 것
이 게임의 화면은 정면도 위에서 본 것도 아닌 어중간한 각도입니다. 이 각도 덕분에 물체의 높이가 눈에 보이지만, 대신 내 기체와 적이 같은 높이에 있는지를 판단하기가 까다로워집니다. 초보자가 이런 게임에서 헤매는 이유가 대부분 여기에 있습니다.
해법은 그림자입니다. 지면에 떨어지는 그림자를 보면 내 기체가 실제로 어느 위치 위에 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화면 속 기체 자체를 보지 말고 그림자와 지상 목표물의 관계를 보면, 폭탄을 언제 떨어뜨려야 맞는지가 훨씬 분명해집니다.
이 게임은 앞선 잭슨보다 고도 조절의 비중을 줄이고 회피와 사격 쪽으로 무게를 옮겼습니다. 그래서 고도를 계속 신경 쓰느라 정신없던 잭슨보다 손에 붙는 속도가 빠릅니다. 대신 화면을 채우는 장애물과 적의 밀도는 만만치 않습니다.
두 개의 사격
공중 목표와 지상 목표를 서로 다른 버튼으로 상대한다는 것이 이 게임의 뼈대입니다. 하늘에서 날아오는 미사일과 항공기는 사격 버튼으로, 땅과 바다에 놓인 것들은 폭탄으로 처리합니다. 둘을 섞어 쓰는 게 아니라 대상에 맞는 쪽을 골라야 하므로, 눈에 들어오는 물체가 어느 쪽인지를 즉시 구분하는 습관이 실력이 됩니다.
지상 목표는 반드시 부숴야 하는 것과 무시하고 지나가도 되는 것이 섞여 있습니다. 점수를 욕심내다 보면 폭탄 조준에 매달리게 되고, 그 사이 공중에서 날아오는 것을 못 피합니다. 처음 몇 판은 생존만 목표로 삼고, 지상 목표는 확실히 겹치는 것만 치는 편이 오래 갑니다.
배경으로는 도시와 구축함, 항공모함, 잠수함, 전차 같은 것들이 지나갑니다. 우주 배경 일색이던 그 시절 슈팅 게임 사이에서 현대 군용 병기가 줄지어 나오는 화면은 확실히 다른 인상을 줬습니다.
처음 하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죽음은 적의 총알이 아니라 벽과 구조물입니다. 비스듬한 시점에서는 앞에 놓인 벽의 틈이 실제로 어디에 뚫려 있는지 착각하기 쉽습니다. 틈이 보이면 그쪽으로 급하게 붙지 말고, 여유 있게 미리 자리를 잡아 두고 직진으로 통과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화면 가장자리도 함정입니다. 위험을 피하려고 계속 한쪽 구석으로 도망가다 보면 다음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빠져나갈 방향이 없어집니다. 되도록 화면 중앙 부근에 머물면서 좌우로 여유를 남겨 두는 것이 기본입니다.
연료나 시간에 쫓기는 구간에서는 무리하게 적을 다 잡으려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런 부류의 게임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목표이고, 뒤로 물러설 수 없는 구조이므로 판단이 늦어지는 것이 곧 손해입니다.
세가와 그 시절 기판 사정
이 게임이 잭슨과 완전히 호환되는 기판 위에 올라갔다는 사실은 그 시절 오락실 경제를 잘 보여 줍니다. 새 게임 하나를 들이려면 캐비닛 통째로 사야 하는데, 기판만 바꿔 끼울 수 있으면 비용이 확 줄어듭니다. 세가는 잭슨, 슈퍼 잭슨, 콩고 봉고 같은 게임들을 같은 기판 계열로 묶어 두고 그 위에서 돌려 썼습니다.
문제는 이 방식이 게임의 수명에도 영향을 줬다는 점입니다. 개조 키트로만 나온 게임은 기판이 다시 다른 게임으로 덮여 사라지기 쉬웠고, 그래서 남아 있는 기계가 드뭅니다. 이 게임이 지금 희귀한 물건으로 취급받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국내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조 격인 잭슨 쪽이 훨씬 널리 알려져 있었고, 비스듬한 화면의 비행기 게임이라고 하면 대개 그쪽을 떠올렸습니다. 이 게임은 그 자리에 얹혀 잠깐 돌다 사라진 부류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직접 해 보면 잭슨보다 손에 붙는 맛이 낫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고도 조절의 짜증이 줄고 사격의 비중이 늘어서 슈팅 게임다운 리듬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설치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로 돌려 볼 수 있으니, 잭슨을 해 본 사람이라면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