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워프
피라미드 워프 (Pyramid Warp) · 1983 · T&E S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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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피라미드 안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에, 벽으로 나뉜 미로와 정체 모를 초록 상자 세 개가 놓여 있습니다. 상자를 열면 총이 나올 수도, 보석이 나올 수도, 미라가 튀어나올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들었는지 모른 채 열어야 한다는 이 한 가지 규칙이 게임 전체의 긴장을 만듭니다. 안전하게 굴다가도 결국은 상자를 건드려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라미드 워프(Pyramid Warp)는 화면이 넘어가지 않는 고정화면 미로 액션입니다. 방 하나마다 벽으로 짜인 미로와 괴물이 나오는 입구, 서로 이어진 워프 지점 한 쌍, 그리고 초록 상자 세 개가 배치됩니다. 플레이어는 미로를 돌아다니며 보물을 찾아내고, 그러면 방 가운데에 출구가 열려 다음 방으로 내려갑니다. 방 배치는 정해진 여러 종류가 순서를 바꿔 가며 나오므로, 익숙해질수록 진행이 빨라집니다.
한 방을 도는 순서
한 방에 들어가면 먼저 지형을 봅니다. 벽이 어디를 막고 있는지, 워프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 상자 세 개가 어떻게 흩어져 있는지를 파악한 다음 움직이기 시작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면 막다른 골목에 들어갔다가 괴물에게 앞뒤로 막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 게임에서 가장 흔한 죽음의 형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상자를 열 때는 도망칠 길을 확보해 둔 상태여야 합니다. 미라가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벽에 붙은 구석의 상자보다 사방이 트인 자리의 상자를 먼저 건드리는 편이 안전합니다. 총이 먼저 나오면 그 방이 훨씬 편해지므로, 초반 상자 운이 방 하나의 난이도를 크게 바꿉니다.
총과 워프
상자에서 나온 총을 얻으면 괴물을 쏠 수 있습니다. 다만 맞은 괴물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입구로 돌아가 다시 나오므로, 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길을 여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길목을 막고 선 괴물을 잠시 치워 놓고 그사이에 지나가는 용도로 쓰는 것이 맞습니다. 총을 얻었다고 사냥에 나서면 탄만 낭비하고 오히려 위험해집니다.
워프 지점 한 쌍은 이 게임의 이름이 붙은 이유이자 가장 유용한 탈출 수단입니다. 한쪽에 들어가면 다른 쪽으로 즉시 이동하므로, 벽으로 막힌 반대편으로 단숨에 건너갈 수 있습니다. 괴물에게 쫓기다가 워프로 빠져나가는 것이 이 게임의 기본 생존 요령입니다. 반대로 워프 출구 근처에 괴물이 서성이고 있으면 나오자마자 부딪히므로, 뛰어들기 전에 반대편 상황을 한 번 눈으로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괴물의 움직임 읽기
방을 돌아다니는 괴물은 정해진 경로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입니다. 박쥐 계열은 빠르고 방향이 자주 바뀌며, 바닥을 기는 전갈 계열은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좁은 통로를 잘 막습니다. 정해진 패턴이 없다는 것은 외워서 넘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반대로 운이 좋으면 쉽게 지나갈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게임에서 살아남는 요령은 늘 비슷합니다. 통로 한가운데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갈림길을 등지고 움직이며,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는 자리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특히 상자를 열거나 보물을 줍느라 잠깐 멈추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므로, 그 직전에 주변 괴물의 위치를 확인해 두어야 합니다. 미로 액션 전반에 통하는 감각이지만, 상자의 내용물이 무작위인 이 게임에서는 그 습관의 값어치가 특히 큽니다.
만든 곳과 시절
이 작품을 만든 곳은 이후 액션 롤플레잉과 골프 게임으로 이름을 알린 일본의 소프트웨어 회사입니다. 이 게임은 그 회사가 이름을 알리기 전, 초기 컴퓨터용 소프트를 만들던 시기의 작품입니다. 화면 구성은 단순하고 색도 몇 가지 되지 않지만, 한 화면 안에서 규칙이 완결되고 반복해서 붙잡게 만드는 구조는 이 시기 소프트가 잘하던 방식입니다.
당시 가정용 컴퓨터 게임은 용량이 작아서 화려한 연출을 넣을 여지가 없었습니다. 대신 규칙 하나에 변수를 하나 얹는 식으로 재미를 만들었는데, 여기서는 그 변수가 상자와 워프였습니다. 이 두 가지만으로 매 방마다 다른 판단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 이 게임의 설계입니다.
지금 해 보면
한국에서 이 기종은 오락실보다 가정과 학원, 문방구 한쪽의 컴퓨터로 접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카트리지나 테이프로 유통되던 시절이라 한 사람이 가진 게임을 여럿이 돌려 보는 일이 흔했고, 그 목록에 이런 짧은 미로 액션이 자주 끼어 있었습니다.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피라미드 안에서 상자를 여는 화면만은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 해 보면 조작은 방향 이동과 사격뿐이라 배우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대신 한두 방만 지나면 왜 이 게임이 계속 다음 판을 누르게 만드는지 알게 됩니다. 상자를 열기 직전의 잠깐이 매번 다르고, 그 결과에 따라 방 하나가 순식간에 쉬워지거나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