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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

피피 (Pipi) · 1985 · Nippon Dex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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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X 초창기 카트리지 중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진 것들이 많습니다. 이 게임의 일본어 제목은 앵무새 피피의 대모험이라는 뜻인데, 주인공이 사람도 로봇도 아닌 앵무새라는 점부터가 그 시절 게임 기획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를 보여 줍니다. 16킬로바이트짜리 아주 작은 카트리지 안에 담긴, 딱 그만큼 단출한 게임입니다.

Pipi는 앵무새 피피를 조작해 화면 안을 돌아다니는 액션 게임입니다. 화면 하나가 그대로 무대가 되고, 그 안에 통로와 막힌 길이 얽혀 있는 미로 구조가 깔려 있습니다. 조작은 방향 이동과 버튼 하나로 아주 단순하며, 키보드의 커서 키로도 조이스틱으로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화면이 스크롤되지 않고 한 판이 한 화면 안에서 끝나는, 오락실 초기 게임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는 구성입니다.

피피 액션 게임 화면 1 - MSX (1985)

이런 형태의 게임을 어떻게 하는가

한 화면짜리 미로 액션은 규칙이 몇 줄로 끝납니다. 화면 안을 돌아다니며 정해진 목표를 채우고, 그동안 나를 쫓는 것들에게 잡히지 않으면 됩니다. 목표를 다 채우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고, 화면이 넘어갈수록 쫓는 것들이 늘어나거나 빨라집니다. 그것이 전부이고, 그래서 몇 판만 해 보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몸에 익습니다.

이런 게임에서 실력을 가르는 것은 동선입니다. 화면 전체를 눈에 담고, 아직 남은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와 적이 지금 어느 통로에 있는지를 동시에 보면서 가장 짧고 안전한 경로를 잡아야 합니다. 눈앞의 목표만 쫓아 움직이면 어느새 막다른 골목에서 앞뒤로 포위됩니다.

두 번째 요령은 막다른 길을 미리 파악해 두는 것입니다. 미로 안에는 들어가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는 구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 곳은 가장 마지막에, 적이 멀리 있을 때 처리해야 합니다. 초반에 남겨 두었다가 나중에 몰려서 들어가는 순서가 되면 그 판은 거기서 끝납니다.

세 번째는 적의 움직임을 읽는 것입니다. 이 시절 게임의 적은 대개 몇 가지 정해진 규칙으로 움직입니다. 나를 곧장 쫓는 것, 정해진 길을 도는 것, 무작위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섞여 있습니다. 어느 것이 나를 쫓는 종류인지 구분해 두면 그것만 주시하면서 나머지는 지나가듯 피할 수 있습니다.

피피 액션 게임 화면 2 - MSX (1985)

초기 MSX 게임을 지금 즐길 때

이 시기 게임을 오늘 다시 잡으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정보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엇이 목표인지, 어떤 것이 나에게 해로운지를 알려 주는 설명이 화면에 없습니다. 몇 번 부딪혀 보고 죽어 보면서 규칙을 스스로 알아내는 것이 이 시절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었고, 그 과정 자체가 재미의 일부였습니다.

또 하나는 잔기와 점수만 있고 저장이 없다는 점입니다. 판이 끝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남는 것은 화면 위의 점수뿐입니다. 그래서 목표가 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난번보다 한 판 더 가는 것에 놓입니다. 짧게 여러 번 반복하는 방식으로 즐기면 이런 게임의 결이 훨씬 잘 살아납니다.

만든 곳과 그 시절 사정

이 게임은 UPL이 만들고 니혼 덱스타가 내놓았으며, 자레코가 판권을 가진 형태로 나왔습니다. 개발과 발매와 판권이 각각 다른 회사에 걸쳐 있는 이 구조는 1980년대 중반 일본 게임 업계에서 드물지 않았습니다. 작은 개발사가 게임을 만들면 유통망을 가진 회사가 이름을 붙여 내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UPL은 오락실 쪽에서 몇몇 개성 있는 게임을 남긴 회사입니다. 이런 작은 회사들이 MSX라는 가정용 기기에도 물량을 대던 시기가 있었고, 이 카트리지도 그 흐름 위에 있습니다. 카트리지 용량이 16킬로바이트에 불과했다는 점은 이 게임이 얼마나 단출한 규모였는지를 말해 줍니다.

한국에서 이런 게임의 자리

한국에서 MSX가 가정에 보급되던 시기, 게임은 대부분 복사본으로 돌았습니다. 여러 게임을 하나에 묶어 담은 카트리지나 디스크가 문방구와 전자상가를 통해 퍼졌고, 그 안에는 이런 이름 모를 초기작들이 섞여 있곤 했습니다. 어떤 게임인지도 모르고 목록에서 골라 실행해 보다가 우연히 만나는 것이 흔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게임도 그런 부류입니다. 제대로 된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앵무새가 나오는 화면을 어렴풋이 떠올리는 사람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다시 열어 보면 MSX가 갓 나왔던 시절의 게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화면 하나로 어떻게 놀이를 만들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