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베스트 문 64
목장이야기 64 (Harvest Moon 64 USA) · 1999 · Victor Interactive Softw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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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부터 뽑는 게임
시작하면 주인공이 물려받은 건 잡초와 돌과 나뭇가지로 뒤덮인 밭입니다. 적도 없고 점수도 없고, 처음 며칠은 그저 낫으로 풀을 베고 망치로 돌을 깨서 심을 자리를 만드는 데 씁니다. 액션도 대전도 없는 이 반복이 이상하게 손에서 놓아지지 않는다는 게 이 게임의 정체입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체력이 정해져 있어서, 욕심내서 밭을 다 갈다 보면 오후에 쓰러집니다. 어디까지 하고 자러 갈지, 남은 힘으로 온천에 들를지 마을에 내려갈지 매일 저울질하게 됩니다.
어떤 게임인가
목장이야기 64(Harvest Moon 64)는 시골 마을의 농장을 물려받아 작물을 심고 가축을 기르며 살아가는 경영 시뮬레이션입니다.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리는 게임이 아니라, 계절이 돌고 해가 바뀌는 동안 농장을 얼마나 일궈 놓았느냐가 결과가 됩니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작물에 물을 주고, 가축을 밖에 내보내고, 남는 시간에 산에 올라가 나물을 캐거나 광산을 파는 식으로 흘러갑니다. 수확한 것은 출하 상자에 넣어 두면 다음 날 돈으로 들어옵니다. 그 돈으로 씨앗과 도구를 사고 축사를 넓히는 순환이 게임 내내 이어집니다.
계절은 넷으로 나뉘고 계절마다 심을 수 있는 작물이 다릅니다. 계절이 바뀌면 밭에 남은 작물이 시들어 버리므로, 다음 계절이 오기 전에 무엇을 언제까지 심을지 계산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
이 시리즈를 오래 붙잡게 만드는 건 사실 농사보다 사람입니다. 마을에는 저마다 성격이 다른 주민들이 살고, 요일과 시간대마다 있는 곳이 정해져 있습니다. 매일 얼굴을 보고 좋아하는 물건을 건네다 보면 관계가 조금씩 달라지고, 그중 결혼할 상대를 정하게 됩니다.
인상적인 건 이쪽이 게으르게 있으면 상대의 삶도 흘러간다는 점입니다. 내가 신경 쓰지 않는 사이에 다른 인물과 가까워지기도 하고, 마을의 축제 때 누구와 함께 있느냐로 분위기가 바뀝니다. 농장 일만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아무와도 친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계절마다 열리는 축제도 하루를 통째로 잡아먹지만, 그 자리에 나가야만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효율만 따지면 밭에서 일하는 게 맞는데, 그렇게 하면 이 게임의 절반을 놓치게 됩니다.
가축과 광산
소와 닭, 양을 기를 수 있고 매일 돌봐야 합니다. 쓰다듬고 먹이를 주고 밖에 내보내는 일을 거르면 상태가 나빠지고 생산물의 질도 떨어집니다. 비 오는 날 내보냈다가 병이 나기도 해서, 아침에 날씨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됩니다.
광산은 이 게임의 숨은 시간 먹는 하마입니다. 층을 내려갈수록 좋은 광석이 나오는데, 내려가는 데 체력이 들고 언제 바닥이 나올지 모릅니다. 초반 자금을 만들기에는 광산이 빠르지만, 무리하다 쓰러지면 하루를 통째로 날립니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
첫 해에 흔한 실수는 밭을 너무 크게 벌리는 것입니다. 물을 주는 데도 체력이 들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넓이 이상으로 심으면 결국 몇 칸은 말라 죽습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해서 도구를 강화한 다음 넓히는 편이 훨씬 안정적입니다.
도구 강화는 되도록 일찍 해 두는 게 좋습니다. 물뿌리개 하나만 올려도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칸이 크게 늘어나고, 남는 시간이 그대로 다른 일에 쓰입니다. 초반에 모은 돈을 씨앗에만 쏟아붓기보다 도구에 나눠 쓰는 쪽이 길게 보면 이득입니다.
또 하나는 잠자는 시간을 지키는 것입니다. 밤늦게까지 일하다 쓰러지면 다음 날이 통째로 사라집니다. 해가 지면 미련 없이 집으로 들어가는 게 결국 더 많은 일을 하는 길입니다.
이 시리즈의 자리
농사를 소재로 한 게임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와 계절의 흐름을 이렇게 촘촘히 엮은 건 이 시리즈가 자리를 잡은 뒤의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이 64판은 시리즈 팬들이 오래 최고작으로 꼽아 온 판본입니다. 주민 각자에게 붙은 이야기의 밀도와, 몇 년을 이어 가도 볼 게 남아 있는 구성이 그 이유입니다.
국내에는 정식으로 소개된 적이 없어 처음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이었지만, 한 번 손을 대면 계절이 서너 번 도는 줄도 모르고 붙잡게 된다는 평은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