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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수호전 1편

환상수호전 (Gensou Suikoden Japan) · 1995 · Ko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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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편에 설 수 없을 때

주인공은 제국 장군의 아들입니다. 아무 걱정 없이 출세 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소년이 제국의 썩은 속을 목격하고, 결국 아버지가 지키는 나라의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게임 초반부터 이 어긋남을 밀어붙이기 때문에, 처음 몇 시간 만에 이야기의 무게가 확 달라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전환점을 지나고 나면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는 감각이 계속 따라붙습니다.

환상수호전 1편(Gensou Suikoden)은 코나미가 만든 플레이스테이션용 RPG로, 시리즈의 출발점입니다. 중국 고전 수호지처럼 각지에 흩어진 108명의 인물을 모아 하나의 세력을 이루는 것이 뼈대이며, 이 구조는 이후 시리즈 내내 이어집니다. 후속작 환상수호전 2가 워낙 유명해진 탓에 가려지는 면이 있지만, 그 세계의 규칙을 처음 세운 것은 이 작품입니다.

환상수호전 1편 RPG 게임 화면 1 - 플레이스테이션 (1995)

빈 성이 도시가 되기까지

반란군에 몸을 담게 된 주인공은 낡은 성 하나를 거점으로 받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도 없고 상점도 없는 그냥 껍데기입니다. 그런데 동료를 하나씩 데려올 때마다 성에 방이 열립니다. 대장장이가 들어오면 무기를 강화할 수 있게 되고, 상인이 들어오면 물건을 살 수 있게 되고, 창고지기가 들어오면 짐 관리가 편해집니다.

성의 규모 자체도 모은 인원 수에 따라 단계적으로 커집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와 후반의 성을 비교하면 아예 다른 장소처럼 보입니다. RPG에서 흔한 거점이 아니라, 내가 모은 사람들로 채워 만든 결과물이라는 감각이 확실해서 동료 하나를 더 찾아 나설 이유가 됩니다.

환상수호전 1편 RPG 게임 화면 2 - 플레이스테이션 (1995)

여섯 명의 진형과 세 갈래 싸움

전투는 여섯 명을 앞줄과 뒷줄로 나눠 세우는 방식입니다. 창처럼 긴 무기는 뒷줄에서도 때릴 수 있고, 단검류는 앞줄에 서야 합니다. 인물의 무기 사거리에 따라 자리가 정해지므로, 파티를 짤 때 역할 배분이 자연스럽게 갈립니다.

여기에 일대일 결투와 군대 전쟁이 이야기 중간중간 끼어듭니다. 결투는 공격·방어·필살이 서로 물고 물리는 심리전이고, 전쟁은 모아 둔 동료를 부대로 편성해 치릅니다. 전쟁에서 특정 인물을 내보내면 사망하는 전개도 있어, 사람을 모으는 게임이면서 동시에 잃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문장과 진문장

마법은 몸에 새기는 문장으로 씁니다. 인물마다 문장을 새길 수 있는 자리가 다르고, 화염·수류·번개 같은 계열을 골라 붙이면 그 인물의 역할이 정해집니다. 무기를 강화하려면 대장간에서 돈을 들여야 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비용이 크게 뛰기 때문에 주력 여섯 명을 정해 집중 투자하는 편이 낫습니다.

스물일곱 개의 진문장은 이 세계의 근간에 놓인 설정입니다. 주인공이 지니게 되는 문장이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가 이야기 후반의 비극을 결정하고, 그 여파는 다음 작품까지 이어집니다. 1편과 2편을 이어서 해 보면 인물과 사건이 겹쳐 보이는 지점이 많습니다.

짧지만 밀도 있는 여정

요즘 RPG에 비하면 분량이 긴 편은 아닙니다. 곁길로 새지 않고 달리면 생각보다 빨리 끝을 봅니다. 대신 108명을 전부 모으려 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특정 시점을 넘기면 놓치는 인물이 있어 순서를 신경 써야 하고, 전원을 모아야만 볼 수 있는 결말이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2D 도트로 그려진 마을과 인물은 지금 봐도 정갈합니다. 처음 시리즈를 접하는 사람에게는 이 1편부터 시작하기를 권할 만합니다. 성이 채워지는 감각을 한 번 알고 나면 다음 작품이 훨씬 진하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