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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 디그리

720 디그리 (720 USA) · 1989 · Mi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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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보드를 탄 채로 공중에서 두 바퀴, 그러니까 720도를 돌아야 이름값을 하는 게임입니다. 제목 자체가 기술의 이름이고, 그 기술을 성공시키는 순간이 이 게임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처음 시작하면 720도는커녕 램프 근처에도 못 가고 시간만 흘러갑니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기 때문입니다.

720(720 디그리)은 스케이트보드를 소재로 한 스포츠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스케이트보드를 탄 소년이 되어 넓은 공원을 돌아다니며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장비를 사고, 네 종류의 경기장에 들어가 점수를 냅니다. 오락실 원작이 먼저 나왔고 그 뒤에 가정용 기기로 옮겨진 작품인데, 오락실판이 전용 회전 컨트롤러를 쓴 것과 달리 이 이식판은 평범한 십자키로 방향을 돌립니다. 조작 감각이 원작과 달라진 가장 큰 지점이 여기입니다.

720 디그리 스포츠 게임 화면 1 - 패미컴 (1989)

공원을 돌아다니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 게임의 구조는 조금 특이합니다. 곧바로 경기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공원이 주어집니다. 이 공원 안에는 네 개의 경기장 입구가 흩어져 있고, 각 입구에는 들어가는 데 필요한 입장권 값이 붙어 있습니다. 표를 살 돈이 없으면 문 앞까지 가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처음 할 일은 돈벌이입니다. 공원 곳곳에 놓인 동전을 주워 모으고, 램프나 경사면에서 기술을 성공시켜 점수와 돈을 챙깁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상점도 나오는데, 여기서 보드와 신발, 보호구 같은 장비를 살 수 있습니다. 장비를 좋은 것으로 바꾸면 속도가 붙고 기술이 더 잘 들어가므로, 돈을 경기장 입장권에 다 쓸지 장비에 투자할지가 초반의 고민거리가 됩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공원에 머무는 시간에는 제한이 있고, 그 시간이 다 되어 가면 화면에 경고가 뜹니다. 이때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성난 무리가 몰려와 플레이어를 쫓아옵니다. 붙잡히면 그대로 한 목숨이 날아갑니다. 이 압박 때문에 공원 구간은 한가로운 자유 시간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 안에 돈을 마련해야 하는 촉박한 구간이 됩니다.

네 가지 경기와 720도

경기장은 성격이 다 다릅니다. 램프를 오르내리며 공중 기술을 보여 주는 종목, 정해진 구간을 빠르게 통과하는 종목, 장애물 사이를 정확하게 빠져나가는 종목처럼 요구하는 능력이 갈립니다. 어떤 종목은 속도가 중요하고, 어떤 종목은 착지의 정확도가 중요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램프 종목입니다. 경사면을 왕복하며 속도를 올린 뒤 공중으로 튀어 올라, 그 짧은 체공 시간 안에 몸을 돌립니다. 한 바퀴를 돌아 착지하면 360, 두 바퀴를 돌면 720입니다. 720을 성공시키면 화면에 크게 표시가 나오고 점수가 크게 붙습니다. 이 한 번을 위해 램프를 수십 번 오르내리게 됩니다.

착지가 관건입니다. 회전을 욕심내다 각도가 어긋난 채로 바닥에 닿으면 그대로 넘어집니다. 넘어지면 시간을 잃고, 시간을 잃으면 다음 경기장 입장권 값이 부담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익숙해지기 전에는 무리하지 않고 360으로 안전하게 점수를 쌓는 편이 낫습니다. 720은 회전 속도가 충분히 붙었다는 감각이 왔을 때만 노립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이 게임을 처음 잡으면 대개 두 곳에서 막힙니다. 하나는 앞서 말한 돈입니다. 공원을 어슬렁거리기만 하면 시간이 다 가도록 표 한 장 값도 못 모읍니다. 동전만 줍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램프에서 기술을 성공시켜 한 번에 큰 액수를 받아야 계산이 맞습니다. 즉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기술을 어느 정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방향 조작입니다. 오락실판은 손잡이를 실제로 돌려 방향을 잡았지만, 이 이식판은 십자키로 방향을 한 칸씩 꺾습니다. 원하는 각도로 곧장 트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눌러 돌려야 하므로, 급하게 방향을 바꾸려 하면 엉뚱한 쪽으로 미끄러집니다. 목적지가 보이면 미리미리 방향을 잡아 두는 습관을 들이면 훨씬 수월해집니다.

세 번째로 걸리는 것은 판정입니다. 지형의 경사면과 평지가 만나는 자리에서 보드가 예상과 다르게 튀는 경우가 있어, 램프에 정확히 올라타는 진입 각도를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이 감각만 잡히면 난이도는 눈에 띄게 내려갑니다.

스케이트보드 게임의 이른 조상

이 작품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스케이트보드를 소재로 한 게임 가운데 상당히 이른 축에 들기 때문입니다. 뒷날 스케이트보드 게임들이 자리 잡은 공식, 그러니까 넓은 무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기술로 점수를 쌓고 그 점수로 다음 단계를 여는 흐름의 원형이 여기 이미 들어 있습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구간과 종목별 경기를 하나로 묶은 구조도 당시로서는 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식 과정에서 잃은 것도 분명합니다. 전용 컨트롤러가 주던 손맛이 사라지면서 조작이 뻑뻑해졌고, 화면에 한 번에 담기는 정보량도 줄었습니다.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먼저 만난 사람이라면 가정용판을 잡았을 때 어색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반대로 이 이식판으로 처음 접한 사람에게는 이쪽이 원래 감각으로 남습니다.

국내에서는 스케이트보드라는 소재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보드를 실제로 타 본 사람이 드물던 시절이라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데부터 시간이 걸렸고, 그래서 널리 퍼진 통칭도 남지 않았습니다. 대신 화면에 크게 뜨는 숫자 720을 그대로 읽어 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른 게임에 없는 소재였던 만큼, 한 번 붙잡은 사람은 720도 한 번 성공시키겠다고 오래 매달리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