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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I. 베이스볼 3 패미컴판

R.B.I. 베이스볼 3 (R B I Baseball 3 USA Unl) · 1991 · Te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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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허가 없이 나온 팩

패미컴 시절 북미 시장에는 특이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기기 제조사가 게임 출시를 엄격하게 통제하던 시절, 그 통제를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팩을 만들어 판 회사가 있었습니다. 아케이드 게임을 만들던 쪽에서 갈라져 나온 회사였고, 법정 다툼까지 가면서도 자기 이름을 걸고 팩을 찍어 냈습니다. 이 야구 게임은 그 회사가 패미컴에 내놓은 마지막 야구 시리즈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 팩은 정식 허가 표시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팩의 모양새도 정품과 조금 다르게 생겼습니다. 게임 내용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이 시절 게임기 시장이 어떻게 굴러갔는지를 보여 주는 물건이라는 점에서 지금은 오히려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R.B.I. 베이스볼 3 패미컴판 스포츠 게임 화면 1 - 패미컴 (1991)

어떤 게임인가

R.B.I. 베이스볼 3(R.B.I. Baseball 3)은 패미컴용 야구 게임입니다. 실제 프로 야구 선수 이름을 넣은 것으로 이름을 알린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고, 앞선 두 편보다 수록 팀과 선수가 늘었습니다. 팀을 골라 한 경기를 하거나 여러 경기를 이어 가는 구성이며, 조작은 타격과 주루, 투구와 송구로 단출합니다.

화면은 투수 뒤에서 타자를 보는 익숙한 구도입니다. 공이 날아오면 방망이를 휘두르고, 맞으면 화면이 그라운드 쪽으로 전환되어 타구를 쫓아갑니다. 8비트 기기의 한계 안에서 야구의 흐름을 끊기지 않게 이어 붙인 구성이라, 지금 봐도 경기 진행이 답답하지 않습니다.

R.B.I. 베이스볼 3 패미컴판 스포츠 게임 화면 2 - 패미컴 (1991)

투수와 타자의 수싸움

이 시리즈에서 가장 손맛이 좋은 부분은 투구입니다. 공을 던진 뒤에도 방향키를 눌러 궤적을 휘게 만들 수 있어서,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오던 공을 마지막에 바깥으로 빼거나 안쪽으로 밀어 넣을 수 있습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붙으면 이 조작 하나에서 온갖 눈치 싸움이 벌어집니다.

타자 쪽에서는 이 휘어짐 때문에 방망이가 헛나가는 일이 잦습니다. 처음에는 공이 오는 대로 다 휘두르게 되는데, 몇 타석 참고 지켜보면 상대가 즐겨 쓰는 궤적이 보입니다. 그때부터는 그 궤적을 노리고 미리 방망이를 내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가는 감각이 여기서 생깁니다.

수비에서 점수를 지키는 법

수비는 자동으로 가장 가까운 야수가 잡히는 방식이라 조작 부담이 적습니다. 문제는 송구 판단입니다. 어디로 던질지 정해 주지 않으면 주자가 한 베이스씩 더 갑니다. 특히 외야로 나간 타구에서 무리하게 홈으로 던지려다 중계가 늦어 주자를 다 살려 주는 일이 흔합니다.

기본 원칙은 확실한 아웃을 먼저 잡는 것입니다. 홈에서 잡을 자신이 없으면 1루나 2루에서 하나를 확실히 끊는 편이 낫습니다. 8비트 야구 게임에서 실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우는 대개 이런 무리한 송구 하나에서 시작합니다.

8비트 기기에서의 한계와 미덕

같은 게임이 16비트 기기로도 나왔고, 그쪽은 선수 그림이 크고 색이 풍부합니다. 이 8비트판은 화면이 소박하고 소리도 단조롭습니다. 하지만 야구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투구와 타격의 타이밍인데, 그 부분은 기기 성능과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화면이 단순해서 공의 궤적을 읽기 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기가 빨리 진행되는 것도 장점입니다. 이닝 사이 대기 시간이 짧고 연출이 길지 않아, 한 경기를 앉은자리에서 끝낼 수 있습니다. 요즘 야구 게임처럼 한 경기에 긴 시간이 드는 것과 비교하면 부담 없이 켜게 되는 부류입니다.

한국에서의 기억

국내에서는 미국 프로 야구를 다룬 게임이라 선수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야구 자체가 워낙 인기 있는 종목이라 규칙만 알면 바로 붙을 수 있었고, 두 사람이 컨트롤러를 나눠 잡고 하는 대전용으로 많이 돌아갔습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기억담은 마지막 회 역전입니다. 조작이 단순한 만큼 한 방에 뒤집히는 일이 자주 생기고, 그래서 끝까지 긴장이 풀리지 않습니다. 화려한 요소는 없지만 야구라는 종목이 가진 긴장을 8비트 안에 성실하게 담아 놓은 게임이라, 지금 다시 켜도 몇 경기는 그냥 지나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