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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I. 베이스볼 4

R.B.I. 베이스볼 4 (R B I Baseball 4 USA) · 1992 · Te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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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선스 없이 시작해 실명 선수로 끝난 시리즈

이 시리즈의 출발점에는 재미있는 사정이 있습니다. 초기작은 선수 노조와의 계약으로 실제 선수 이름을 쓸 수 있었지만 팀 로고나 구단 관련 권리는 온전하지 않았고, 이후 작품들을 내면서 조금씩 라이선스를 채워 나갔습니다. 그 결과 4편에 이르면 실제 팀과 실제 선수, 그리고 각 구단의 구장까지 화면에 올라옵니다.

야구 게임에서 실명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듭니다. 내가 아는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고, 그 선수의 실제 성적이 능력치에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한 타석의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시리즈가 오래 사랑받은 이유의 절반쯤은 여기에 있습니다.

R.B.I. 베이스볼 4 스포츠 게임 화면 1 - 메가 드라이브 (1992)

어떤 게임인가

R.B.I. 베이스볼 4(R.B.I. Baseball 4)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의 야구 게임입니다. 투수를 골라 공을 던지고, 타석에서는 타이밍을 맞춰 방망이를 휘두르고, 수비에서는 야수를 조작해 공을 잡아 던집니다. 규칙은 실제 야구 그대로이고, 조작은 방향키와 버튼 두 개 안에서 대부분 해결됩니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화면 구성입니다. 투수와 타자를 크게 확대해 보여 주는 대신, 타구가 뜨면 화면이 그라운드 전체로 물러나 야수들의 위치를 한눈에 보여 줍니다. 덕분에 수비할 때 어느 야수를 움직여야 할지 판단하기 쉽고, 주자와 야수의 경합을 눈으로 따라가기 좋습니다.

투구는 방향키로 궤적을 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던진 뒤에도 좌우로 조금씩 밀 수 있어서, 스트라이크존 가장자리로 흘려 보내거나 몸쪽으로 붙이는 조작이 가능합니다. 이 미세 조정이 이 게임 투수전의 핵심입니다.

R.B.I. 베이스볼 4 스포츠 게임 화면 2 - 메가 드라이브 (1992)

4편에서 늘어난 것들

전작들과 견줘 4편은 부가 모드를 여럿 얹었습니다. 홈런 더비가 들어가 타격만 반복해서 즐길 수 있게 되었고, 특정 상황을 재현해 놓고 그 상황을 뒤집는 형태의 모드도 추가되었습니다. 정규 시즌 경기만 반복하던 앞 작품들보다 손댈 곳이 늘어난 셈입니다.

팀 편성 기능도 눈에 띕니다. 선수를 골라 자기 팀을 짜는 것이 가능해져서, 좋아하는 선수만 모아 놓은 조합을 만들어 친구와 붙는 식의 놀이가 생겼습니다. 여기에 과거 시즌의 우승 팀들이 수록되어 있어, 다른 연대의 팀끼리 맞붙이는 것도 됩니다.

잘 치고 잘 막으려면

타격에서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무조건 크게 휘두르는 것입니다. 이 게임은 배트에 맞는 지점에 따라 타구 방향이 정해지는데, 급하게 휘두르면 파울이나 내야 땅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공이 나오는 순간 궤적을 보고 반박자 늦게 시작한다는 감각으로 치는 편이 안타 확률이 높습니다.

수비에서는 야수 전환이 관건입니다. 타구가 뜨자마자 가장 가까운 야수로 바꾸고 낙하 지점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초보자는 엉뚱한 야수를 잡고 헤매다 안타를 내줍니다. 공을 잡은 뒤 어느 베이스로 던질지도 버튼 조작으로 정해야 하니, 주자가 여럿일 때는 미리 어디로 던질지 정해 두고 잡는 것이 좋습니다.

투수 운용도 신경 써야 합니다. 한 투수를 끝까지 끌고 가면 공이 눈에 띄게 밋밋해집니다. 구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미련 없이 바꿔 주는 편이 실점을 줄이는 길입니다.

같은 시기 야구 게임들 사이에서

메가드라이브에는 야구 게임이 여럿 있었고, 각각 지향점이 달랐습니다. 어떤 게임은 화려한 연출과 큰 캐릭터로 승부했고, 어떤 게임은 시즌 운영과 통계에 힘을 줬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사이에서 조작의 단순함과 경기 진행의 빠름을 택했습니다.

한 경기가 짧게 끝난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연출이 길게 끼어들지 않아 이닝이 빠르게 넘어가고, 둘이서 앉아 한 게임 하고 일어서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야구 게임을 처음 잡는 사람에게 규칙을 설명해 주며 붙기에도 좋은 편입니다.

국내에서의 기억

한국에서는 메가드라이브가 삼성 쪽 유통으로 보급되던 시기라, 이 게임도 대여점이나 가정용 게임기를 갖춘 집에서 접한 사람이 많습니다. 시리즈 이름보다 그냥 "야구 게임"으로 불렸고, 형제나 친구끼리 한 경기씩 붙는 용도로 자주 켰습니다.

프로야구 중계를 보고 자란 세대에게 실명 선수가 나오는 야구 게임은 그 자체로 매력이었습니다. 아는 이름이 타석에 들어설 때의 느낌, 그리고 그 선수가 실제로 잘 치는지 못 치는지가 게임 안에서 드러나는 재미는 지금 다시 해 봐도 크게 바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