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I 스트래티직 디펜스 이니셔티브
SDI 스트래티직 디펜스 이니셔티브 (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 Japan Newer System 16a fd1089b 317 0027) · 1987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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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선이 따로 노는 슈팅
대부분의 슈팅 게임은 내가 움직이는 것과 총알이 나가는 방향이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왼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쏘고, 위로 가면 위로 쏩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그 둘을 아예 떼어 놓았습니다. 화면 아래쪽에는 내가 조종하는 위성 요격기가 있고, 화면 어딘가에는 그것과 별개로 움직이는 조준 십자선이 따로 있습니다. 몸은 몸대로 적탄을 피해야 하고, 조준선은 조준선대로 목표를 좇아야 합니다.
오락실 기판에는 조이스틱과 트랙볼이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왼손으로 스틱을 잡아 기체를 움직이고, 오른손 손바닥으로 트랙볼을 굴려 십자선을 옮기는 식입니다. 처음 앉은 사람은 이 두 손이 서로를 방해해서 십중팔구 어리둥절해집니다. 트랙볼을 세게 굴리다 보면 왼손 스틱을 놓게 되고, 스틱에 신경 쓰면 십자선이 엉뚱한 데 가 있습니다. 이 어긋남을 몸에 익히는 것이 이 게임의 처음이자 마지막 관문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SDI 스트래티직 디펜스 이니셔티브(SDI - Strategic Defense Initiative)는 세가가 1987년에 내놓은 아케이드 슈팅 게임입니다. 제목의 SDI는 당시 미국이 추진하던 전략 방위 구상, 그러니까 날아오는 탄도 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하겠다는 계획을 가리킵니다. 언론에서 '스타워즈 계획'이라고 부르며 한창 떠들썩하던 시절이라, 게임 제목으로 그 말을 그대로 가져다 쓴 셈입니다.
플레이어가 하는 일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궤도에 올린 방위 위성을 조종해서, 적이 쏘아 올린 미사일과 요격기를 격추합니다. 지구를 배경으로 한 우주 공간에서 시작해, 화면 곳곳에서 나타나는 적을 십자선으로 조준해 쏘아 떨어뜨리는 것이 한 판의 골자입니다. 2인 동시 플레이도 지원해서, 옆자리에 친구를 앉히면 두 개의 십자선이 화면을 나눠 맡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먼저 부딪치는 벽은 역시 두 손을 따로 쓰는 조작입니다. 요령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있습니다. 초반에는 기체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화면 아래쪽 안전한 자리에 붙박이로 서서 트랙볼에만 집중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십자선 다루기가 손에 붙은 다음에야 회피를 얹는 순서로 가면 진행이 눈에 띄게 편해집니다.
두 번째로 흔한 실수는 십자선을 적 위에 정확히 올리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이 게임의 탄은 십자선 근처로 퍼지듯 나가기 때문에, 완벽하게 겹치려고 트랙볼을 미세 조정하다가 오히려 시간을 잃습니다. 대충 그 언저리로 옮기고 계속 쏘면서 쓸어 담는 편이 결과가 좋습니다. 트랙볼은 정밀 조준용이 아니라 빠른 이동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난이도가 확 뛰는 지점은 화면에 적이 여럿 동시에 등장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하나를 쫓느라 십자선을 화면 끝까지 끌고 갔는데, 그 사이 반대편에서 날아온 탄에 기체가 맞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이럴 때는 욕심을 버리고 가까운 것부터, 그리고 내 기체 쪽으로 오는 것부터 처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세가와 그 시절 기판
세가는 1980년대 중후반에 시스템 16으로 대표되는 자사 기판 계열을 밀고 있었습니다. 이 게임도 그 계열 위에서 돌아가며, 같은 시기 세가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깔끔한 스프라이트 처리와 안정된 화면 구성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세가는 이 무렵 조이스틱 하나로 끝나지 않는 물건들을 유난히 많이 만들었습니다. 몸이 통째로 흔들리는 체감형 통에서부터, 이 게임처럼 특이한 입력 장치를 붙인 것까지 다양했습니다.
다른 트랙볼 게임과 견주면 성격이 분명해집니다. 트랙볼을 쓰는 고전들은 대개 트랙볼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반면 이 게임은 트랙볼과 스틱을 동시에 쓰라고 요구하는 쪽이라, 조작 난도 자체가 한 단계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진입 장벽은 높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다른 슈팅에서는 나오지 않는 종류의 손맛이 있습니다.
지금 해 보면
국내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흔하게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트랙볼이 붙은 전용 조작반이 필요한 물건이라 아무 통에나 기판만 갈아 끼우는 식으로는 제대로 돌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아는 사람은 있어도 실제로 앉아 본 사람은 드문, 전형적인 숨은 작품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조작을 마우스나 키보드로 대신하게 되는데, 오히려 그 덕에 원래 기판보다 십자선을 다루기가 수월한 면이 있습니다. 트랙볼 특유의 관성이 사라지는 대신, 이 게임이 무엇을 하려던 물건인지는 훨씬 빨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냉전 막바지의 분위기가 게임 제목과 화면에 그대로 묻어 있다는 점도, 지금 보면 그 자체로 볼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