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더스 오브 오아시스
디펜더스 오브 오아시스 (Defenders of Oasis USA Europe) · 1992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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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게임기에서 제대로 된 롤플레잉 게임을 하나 만난다는 것이 귀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화면은 작고 저장 공간은 빠듯한데, 이 장르는 대사도 많고 지도도 넓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은 그 제약 안에서 사막과 궁전, 램프의 정령이 나오는 이야기를 한 편 담아냈습니다. 게임기어에서 이 정도 규모의 롤플레잉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디펜더스 오브 오아시스(Defenders of Oasis)는 아라비안 나이트풍 세계를 무대로 한 턴제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왕자인 주인공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서고, 도중에 동료를 만나 함께 싸웁니다. 마을에서 정보를 얻고 장비를 사고, 바깥으로 나가 적과 싸우며 성장하고,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는 구성입니다.
이 장르를 처음 하신다면
턴제 롤플레잉은 반사신경이 필요 없는 장르입니다. 적을 만나면 화면이 전투로 넘어가고, 내 차례에 무엇을 할지 목록에서 고르면 됩니다. 공격할지, 마법을 쓸지, 회복할지, 도망칠지를 정하고 나면 양쪽이 순서대로 행동합니다. 급할 것이 없으니 화면을 보고 천천히 생각하면 됩니다.
대신 관리가 필요합니다. 회복 수단은 한정되어 있고,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돌아가기가 어려워집니다. 초보자가 가장 흔히 겪는 실패가 회복약을 아끼다가 돌아갈 체력도 안 남은 채 깊은 곳에서 전멸하는 것입니다. 아깝더라도 절반쯤 깎였을 때 회복하는 편이 결국 이득입니다.
두 번째 요령은 성장을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새 지역에 들어가자마자 적이 세게 느껴진다면 아직 갈 때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앞 지역에서 몇 번 더 싸워 능력치를 올리고 오면 같은 적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이 장르에서 막혔을 때의 해법은 대개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조금 더 쌓는 것입니다.
사막과 램프
이 게임의 인상을 만드는 것은 무대입니다. 흔한 중세 유럽풍 세계가 아니라 사막과 오아시스, 궁전과 시장이 배경이고, 등장인물의 차림새와 지명도 그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야기의 소재도 램프에서 나오는 정령처럼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이런 세계관은 당시 롤플레잉 게임에서 흔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기사와 마법사, 용이 나오는 쪽으로 몰려 있던 시기라, 사막을 통째로 무대로 삼은 것만으로도 눈에 띕니다. 화면 색이 제한된 휴대용 기기에서 모래와 석조 건물 위주의 배경은 오히려 잘 어울리는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동료가 합류하며 싸울 수 있는 수가 늘어나는 것도 진행의 재미입니다. 혼자 싸우던 초반에는 공격과 회복을 한 사람이 다 해야 하니 여유가 없는데, 역할이 나뉘고 나면 전투에서 고를 수 있는 수가 늘어납니다. 누구를 앞에 세우고 누구에게 회복을 맡길지 정하는 것부터가 전략입니다.
게임기어라는 기기
게임기어는 컬러 화면을 내세운 휴대용 기기였습니다. 같은 시기 경쟁 기기가 흑백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한 장점이었지만, 전지를 무섭게 먹는다는 약점도 함께 유명했습니다. 롤플레잉처럼 한 번에 오래 하는 장르에는 이 약점이 특히 아프게 작용했습니다.
기기의 보급 규모가 크지 않았던 탓에, 여기에만 나온 게임들은 널리 알려질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 게임도 그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내용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놓인 자리가 좁았던 쪽에 가깝습니다.
지금 해 볼 만한가
국내에서 이 기기를 실제로 가지고 있던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드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건너뛸 이유는 없습니다.
한 편을 끝까지 보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이고, 규칙이 복잡하지 않아 이 장르를 처음 접하는 분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요즘 롤플레잉의 화려한 연출을 기대할 것은 아니지만, 마을에서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다음 갈 곳을 정하는 기본적인 재미는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사막 왕국이라는 무대가 주는 색다른 분위기는 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