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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의 권

북두의 권 (Fist of the North Star USA) · 1989 · Tax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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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미 죽어 있다

패미컴 화면 속 켄시로가 주먹을 내지르면 적이 그 자리에서 부풀어 오르다가 터집니다. 8비트 해상도로 표현된 북두신권의 비검이 그것이었습니다.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이라면 이 짧은 연출 하나만으로도 이 카트리지가 무엇을 팔려고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술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었지만, 터지는 적이라는 아이디어 하나는 확실히 전달됐습니다.

북두의 권(Fist of the North Star)은 일본에서 북두의 권 2라는 제목으로 나온 패미컴용 액션 게임의 해외판입니다. 원작 애니메이션 2기 방영에 맞춰 나온 타이틀이고, 국내 문방구와 가정용 복사 카트리지를 통해 이름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북두의 권 액션 게임 화면 1 - 패미컴 (1989)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기본은 가로 스크롤 액션입니다. 켄시로를 조종해 오른쪽으로 나아가며 몰려드는 잡졸을 정리하고, 구간 끝에서 기다리는 강적을 쓰러뜨립니다. 공격은 펀치와 킥, 그리고 점프를 섞은 공중 공격이 축이고, 앉아서 내는 공격으로 낮은 자세의 적을 상대합니다.

이 게임의 특징은 연타에 있습니다. 적을 붙잡아 두고 빠르게 여러 번 때리면 위력이 실리고, 일정 조건에서는 적이 부풀어 터지는 연출이 나옵니다. 원작의 비검을 게임 문법으로 옮긴 것이 이 연타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버튼을 툭툭 끊어 누르는 것보다 리듬을 붙여 몰아치는 쪽이 훨씬 효율이 좋습니다.

체력은 화면 위에 게이지로 나오고, 회복 수단은 넉넉하지 않습니다. 잡졸에게 조금씩 깎이다가 보스 앞에서 남은 게이지가 부족해 무너지는 것이 이 게임에서 가장 흔한 죽음의 형태입니다.

북두의 권 액션 게임 화면 2 - 패미컴 (1989)

어디서 막히는가

첫 번째 벽은 몰려드는 잡졸의 물량입니다. 화면 좌우 양쪽에서 동시에 들어오는 구간이 있고, 한쪽만 보고 있다가 뒤에서 맞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 게임의 켄시로는 뒤로 도는 동작이 빠르지 않아서, 애초에 등을 벽에 붙이거나 좁은 자리를 잡아 한 방향만 상대하도록 위치를 만드는 것이 요령입니다.

두 번째 벽은 보스전입니다. 보스는 잡졸보다 체력이 훨씬 많고, 어설프게 접근하면 반격을 그대로 받습니다. 무작정 붙어서 때리는 것보다 상대 공격의 간격을 한두 번 지켜본 뒤 빈틈에만 들어가는 편이 안전합니다. 8비트 액션 게임 대부분이 그렇듯 보스의 행동은 몇 가지 패턴의 반복이라, 한 번 파악하면 다음부터는 훨씬 수월해집니다.

세 번째는 점프입니다. 이 시기 액션 게임 특유의 뻣뻣한 점프라 공중에서 방향을 크게 바꾸기 어렵습니다. 뛰기 전에 착지 지점을 정해 두고 뛰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원작을 얼마나 담았나

원작 팬 입장에서 보면 아쉬움이 남는 구성입니다. 캐릭터 그래픽은 8비트의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표정도 체격도 만화의 인상과는 거리가 있고, 스토리는 컷신으로 길게 풀리는 대신 진행 사이사이에 짧게 끼워지는 정도에 그칩니다.

그래도 이 게임이 기억되는 이유는 앞서 말한 터지는 연출과, 원작 특유의 황폐한 세계관을 배경 그래픽으로 어느 정도 살려 냈다는 점입니다. 무너진 건물과 황무지를 배경으로 상반신을 드러낸 남자가 걸어가는 그림은, 색수가 부족한 화면에서도 분위기가 전해집니다.

그 시절 사정과 국내에서의 위치

북두의 권은 80년대 일본 만화 가운데 게임화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작품 중 하나입니다. 여러 기종에 걸쳐 액션, 대전격투, 롤플레잉까지 다양한 장르로 나왔고, 그중 패미컴판은 가장 이른 시기의 결과물에 속합니다. 만화의 인기를 게임기 위에서 어떻게 재현할지 아직 정답이 없던 시기의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만화가 정식 경로보다 해적판과 비디오를 통해 먼저 퍼졌고, 게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방구 게임기와 복사 카트리지 목록에 이름이 올라 있었고, 제목을 몰라도 주먹으로 사람을 터뜨리는 게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 브라우저에서 바로 켜서 확인해 보면, 기억 속의 그 연출이 생각보다 짧고 소박하다는 점이 오히려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