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위도우
블랙 위도우 (Black Widow) · 1982 · At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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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만 그린 화면
1980년대 초 아타리에는 다른 회사에 없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벡터 모니터입니다. 보통 화면이 점을 촘촘히 찍어 그림을 만드는 것과 달리, 벡터 모니터는 전자빔으로 선을 직접 긋습니다. 그래서 선이 유난히 또렷하고, 밝은 부분이 실제로 빛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게임은 그 벡터 화면에 색까지 입혔습니다. 검은 배경 위에 거미줄이 선으로 그려지고, 그 위를 색색의 벌레들이 돌아다닙니다. 지금의 화려한 화면과는 종류가 다른 아름다움이라, 스크린샷보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을 봐야 그 맛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블랙 위도우(Black Widow)는 1982년 아타리가 만든 고정 화면 슈팅입니다. 플레이어는 검은과부거미가 되어 화면을 가득 채운 거미줄 위에 있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벌레들을 쏘아 떨어뜨리며 자기 영역을 지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조작 방식입니다. 조이스틱이 두 개입니다. 왼쪽으로 거미를 움직이고 오른쪽으로 쏠 방향을 정합니다. 이동과 사격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왼쪽 위로 도망치면서 오른쪽 아래로 쏘는 것이 가능합니다. 지금은 흔한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로보트론과 함께 이 조작을 앞장서 쓴 게임 중 하나였습니다.
적은 종류가 여럿입니다. 그냥 다가오는 것, 폭탄을 놓고 가는 것, 빠르게 날아드는 것 등이 섞여 나오고, 잡으면 남는 보너스를 주워 점수를 올립니다.
처음 하면 손이 꼬인다
두 손이 서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 이 게임의 진입 장벽입니다. 처음에는 왼손과 오른손이 같은 방향으로 따라가려 합니다. 그러면 결국 가는 방향으로만 쏘게 되어 두 스틱을 쓰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익숙해지는 요령은 두 손의 역할을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왼손은 오로지 빈 곳을 찾아 도망치는 일만 하고, 오른손은 가장 위험한 적 쪽을 계속 겨눕니다. 처음에는 일부러 뒤로 물러나면서 앞을 쏘는 연습만 반복해도 좋습니다. 이 감각이 잡히면 갑자기 실력이 한 단계 올라갑니다.
또 하나는 화면 가운데에 오래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가운데는 사방에서 접근할 수 있어 포위당하기 쉽습니다. 가장자리를 따라 돌면서 한쪽 방향만 신경 쓰는 편이 오래 삽니다. 다만 구석에 완전히 몰리면 빠져나갈 길이 없으니, 구석에 닿기 전에 미리 돌아 나와야 합니다.
보너스를 줍는 욕심도 조심해야 합니다. 잡은 적이 남긴 것을 주우러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다 죽는 경우가 가장 흔합니다. 주변이 정리된 뒤에 줍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라비타를 개조해 만든 기계
이 게임에는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아타리는 앞서 그라비타라는 벡터 게임을 내놓았는데 판매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은 기계를 활용할 방법으로 블랙 위도우를 준비했고, 그라비타 기계에 꽂아 바꿀 수 있는 형태로도 공급했습니다. 새로 나온 전용 기계라는 것도 실은 팔리지 않은 그라비타 기계를 공장에서 개조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당시 오락실 업계에서 드물지 않았습니다. 기계 한 대는 비싼 물건이었고, 게임이 인기를 잃으면 안쪽 기판만 바꿔 새 게임으로 되살리는 편이 훨씬 쌌습니다. 벡터 모니터처럼 특수한 화면을 쓰는 게임은 아무 기계에나 넣을 수 없었으니, 같은 벡터 기계끼리 돌려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화면
벡터 게임은 한국 오락실에서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모니터 자체가 특수해서 복제 기판을 만들어 일반 기계에 꽂는 방식이 통하지 않았고, 고장 나면 고칠 부품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절 벡터 게임들은 한국에서 대체로 이름만 알려진 존재였습니다.
지금은 화면이 흉내로 재현되므로 진짜 벡터 모니터의 그 밝기까지 느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두 스틱으로 이동과 사격을 나눠 쓰는 감각과, 선으로만 그려진 화면의 단정함은 충분히 전해집니다. 몇 판만 붙잡고 있으면 왜 이 조작 방식이 이후로도 계속 쓰이게 되었는지 몸으로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