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힐
사일런트 힐 (Silent Hill) · 1999 · Ko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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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원래 기술적 타협이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짙은 안개에 잠겨 있어서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손전등을 켜도 빛줄기가 뿌옇게 흩어질 뿐입니다. 이 안개는 사실 당시 하드웨어가 멀리 있는 배경까지 그려 내지 못하는 한계를 가리기 위한 방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시리즈를 상징하는 연출이 됐습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무섭다는 걸, 이 게임이 증명해 버린 셈입니다.
사일런트 힐(Silent Hill)은 코나미가 만든 공포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주인공 해리 메이슨이 교통사고 뒤 사라진 딸 셰릴을 찾아 안개에 잠긴 마을을 뒤지는 이야기이고, 탐색과 퍼즐 풀이, 그리고 간간이 벌어지는 전투로 진행됩니다.
소리로 다가오는 공포
이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라디오 잡음 소리를 잊지 못합니다. 주인공이 들고 다니는 휴대용 라디오는 근처에 괴물이 있으면 지직거리기 시작합니다.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잡음만 커지는 순간의 긴장감이 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소리를 줄이고 하면 게임이 절반은 무너집니다.
전투는 일부러 답답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주인공은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남자라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동작이 굼뜨고 총을 쏴도 잘 맞지 않습니다. 탄약도 넉넉하지 않아서, 싸우는 것보다 뛰어서 지나치는 편이 나은 경우가 많습니다. 강해질 수 없다는 설정 자체가 공포를 만듭니다.
뒤집히는 세계
일정 지점에 도달하면 마을이 통째로 다른 모습으로 뒤바뀝니다. 벽은 녹슨 철망으로 덮이고 바닥은 뚫려 있으며,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울립니다. 같은 장소인데 구조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이 뒤집힌 세계는 시리즈 내내 이어진 대표적인 장치입니다.
탐색 중에는 자물쇠와 암호, 배치 퍼즐 같은 것들이 계속 나옵니다. 학교와 병원이 특히 기억에 남는 구역인데, 종을 치는 순서를 맞추거나 시체 안치소를 뒤져 열쇠를 찾는 식의 진행이 이어집니다. 지도에 주인공이 직접 표시를 해 두기 때문에, 지도를 자주 펴 보는 것이 습관이 됩니다.
여러 개의 결말
이 게임은 진행 중의 선택과 특정 행동 여부에 따라 결말이 달라집니다. 어떤 인물을 구했는지, 특정 아이템을 챙겼는지가 마지막에 반영됩니다. 한 번 클리어하고 나서 다른 결말을 보려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마을에 얽힌 사연이 조금씩 더 드러납니다.
같은 시기의 공포 게임들이 좀비와 총격을 앞세웠다면, 이쪽은 심리적인 불안과 죄책감을 건드리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액션은 답답한데도 분위기 하나로 사람을 붙잡습니다. 이후 이 시리즈가 공포 게임의 한 축이 된 출발점이 바로 이 첫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