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더 볼
썬더 볼 (Thunder Ball) · 1985 · ASC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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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화면 안에 핀볼 대를 통째로 옮겨 놓겠다는 발상은 8비트 시절 개발자들에게 꽤 매력적인 도전이었습니다. 구슬이 부딪히고 튀는 물리 계산을 좁은 처리 성능 안에서 해내야 하고, 그러면서 화면은 실제 핀볼 대처럼 보여야 합니다. 이 게임은 1985년 아스키가 그 도전에 답한 결과물입니다.
썬더 볼(Thunder Ball)은 화면 위에 세로로 놓인 핀볼 대에서 은구슬을 튕겨 내며 점수를 쌓는 게임입니다. 조작은 실제 핀볼 기계를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스페이스 키로 구슬을 발사하고, Z 키와 오른쪽 컨트롤 키가 각각 왼쪽과 오른쪽 플리퍼를 맡습니다. 숫자 키로 인원을 골라 최대 네 사람까지 번갈아 즐길 수 있습니다.
핀볼을 처음 하는 사람에게
핀볼의 규칙은 단순합니다. 구슬이 화면 아래로 빠지지 않게 플리퍼로 계속 쳐올리면서, 대 위에 있는 여러 목표물을 맞혀 점수를 쌓습니다. 구슬을 다 잃으면 판이 끝납니다. 목표는 최대한 오래 살리는 것이고, 그것이 곧 점수입니다.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은 플리퍼를 아무 때나 누르지 않는 것입니다. 구슬이 다가올 때 미리 올려 두고 기다리면 구슬이 플리퍼에 부딪혀 힘없이 튕겨 나가거나, 힘을 잃고 옆으로 빠집니다. 구슬이 플리퍼에 닿기 직전에 눌러야 제대로 된 힘이 실립니다. 이 한 박자의 감각이 핀볼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구슬을 플리퍼 위에 잠깐 세워 두는 기술입니다. 구슬이 플리퍼에 굴러 왔을 때 버튼을 누르지 않고 그대로 두면 구슬이 플리퍼 위에 머무릅니다. 이 상태에서 대 위를 한 번 훑어보고 어디를 노릴지 정한 다음, 원하는 각도가 나오는 순간에 쳐올리면 훨씬 정확한 조준이 가능합니다. 급하게 반사적으로 치는 것보다 이쪽이 점수가 훨씬 잘 나옵니다.
어디를 노려야 하는가
핀볼 대에는 부딪히면 점수를 주는 범퍼, 쓰러뜨리면 점수가 붙는 표적, 통과하면 보너스가 쌓이는 통로 같은 것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점수가 큰 곳은 대개 대의 위쪽, 즉 구슬을 세게 쳐올려야 닿는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핀볼은 안전과 점수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게임입니다. 위쪽 목표를 노리려면 구슬을 강하게 올려야 하는데, 강하게 올린 구슬은 예측하기 어려운 각도로 돌아옵니다. 반대로 살살 굴리면 안전하지만 점수가 붙지 않습니다. 남은 구슬이 몇 개인지에 따라 이 저울을 다르게 놓는 것이 실력입니다.
화면 안의 핀볼이 어려운 이유
실제 핀볼 기계에는 대를 살짝 흔들어 구슬의 궤도를 바꾸는 동작이 있습니다. 화면 속 핀볼도 이 기능을 흉내 내는 경우가 있는데, 지나치면 판이 잠기는 규칙까지 함께 들어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실기의 규칙을 얼마나 충실히 옮겼느냐가 이런 게임의 완성도를 가르는 기준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화면 크기입니다. 실제 핀볼 대는 세로로 길어서, 텔레비전 화면 하나에 다 담으면 구슬이 너무 작아집니다. 그래서 화면을 위아래로 나누어 보여 주거나 스크롤시키는 방식을 쓰는데, 어느 쪽이든 구슬이 화면 경계를 넘나들 때 순간적으로 놓치기 쉽습니다. 8비트 핀볼 게임을 하다가 구슬을 어이없이 잃는 상황은 대개 여기서 나옵니다.
아스키라는 회사와 그 시절
이 게임을 내놓은 아스키는 MSX 규격 자체를 만드는 데 관여한 회사입니다. 잡지를 내고 규격을 정하고 게임도 만드는, 이 기기의 생태계 한복판에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회사가 낸 게임이라는 점에서 이 카트리지는 MSX 초기 라인업의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
이 게임은 일본 밖으로도 나갔습니다. 스페인 쪽 유통을 통해 유럽에도 풀렸고, 이탈리아에서는 여러 게임을 묶은 모음집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초기 MSX 게임이 어떤 경로로 세계에 퍼졌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한국에서의 자리
한국에서 핀볼이라는 놀이 자체가 흔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핀볼 기계를 본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화면 속 핀볼을 만나도 무엇을 하는 게임인지 감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슈팅이나 액션에 비해 손이 덜 가는 장르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도 규칙을 알고 나면 짧게 잡기 좋은 게임입니다. 한 판이 금방 끝나고, 지난번보다 점수를 조금 더 올리는 것이 목표가 되므로 부담 없이 반복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