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KSILGAME

오우거 배틀

전설의 오우거 배틀 (Densetsu no Ogre Battle the March of the Black Queen Japan) · 1993 · Quest

방향버튼ASZX보조QERT동전Shift시작Enter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엔딩이 열세 개인 게임

스테이지를 다 깨고 마왕을 쓰러뜨렸는데 엔딩이 씁쓸합니다. 해방한 도시 사람들이 나를 새로운 폭군이라 부르고, 동료였던 인물이 등을 돌립니다. 분명 이겼는데 진 것 같은 기분으로 엔딩 크레딧을 보게 되는 게임이 있습니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무엇을 했는지를 끝까지 기억합니다. 강한 유닛으로 약한 도시를 짓밟았는지, 죄 없는 마을을 방치했는지, 그런 것들이 카리스마와 평판이라는 수치로 조용히 쌓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청구서처럼 돌아옵니다. 공략집 없이 처음 클리어한 사람 중 최고 엔딩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 이유입니다.

오우거 배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화면 1 - 슈퍼 패미컴 (1993)

어떤 게임인가

오우거 배틀(Densetsu no Ogre Battle: The March of the Black Queen)은 제국에 맞선 해방군의 지휘관이 되어 대륙의 도시들을 되찾아 가는 실시간 전략 RPG입니다. 마쓰노 야스미가 이끄는 퀘스트가 만들었고, 훗날 택틱스 오우거와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로 이어지는 계보의 출발점입니다.

전투는 직접 조작하지 않습니다. 최대 다섯 명으로 짠 부대를 지도 위에 풀어 놓으면, 적 부대와 마주쳤을 때 자동으로 교전이 벌어집니다. 플레이어가 하는 일은 어떤 부대를 어디로 보내고, 누구를 앞줄에 세우고 누구를 뒷줄에 둘지 정하는 것입니다. 전투 도중 개입할 수 있는 건 후퇴 명령 정도라, 승부는 부대를 짜는 순간 이미 절반쯤 정해져 있습니다.

오우거 배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화면 2 - 슈퍼 패미컴 (1993)

부대 편성과 클래스

앞줄과 뒷줄 배치가 그대로 공격 방식이 됩니다. 전사 계열은 앞줄에 있어야 제 위력이 나오고, 마법사와 궁수는 뒷줄에서 원거리로 칩니다. 앞줄에 마법사를 세워 두면 지팡이로 때리는 한심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대장 유닛이 죽거나 후퇴하면 그 부대 전체가 물러나야 하므로, 대장을 어디에 놓느냐가 늘 고민거리입니다.

클래스는 레벨과 능력치, 그리고 카리스마와 얼라인먼트라는 성향 수치에 따라 갈라집니다. 착하게 싸운 저레벨 유닛과 무자비하게 밀어붙인 고레벨 유닛이 완전히 다른 직업으로 자라납니다. 얼라인먼트가 낮은 유닛으로 도시를 해방하면 주민들의 평판이 떨어지고, 그 도시의 세수까지 줄어듭니다. 강한 유닛을 아무 데나 쓰면 안 되는 시스템입니다.

용은 종류에 따라 성장 방향이 나뉘고, 좀비나 리치 같은 언데드 계열은 낮에 약해집니다. 밤낮 개념이 있어 같은 부대라도 시간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타로 카드와 숨은 인물

게임을 시작하면 타로 카드로 몇 가지 질문에 답하게 되는데, 이 대답이 초기 병력과 성향을 정합니다. 진행 중에도 카드가 아이템처럼 쌓여 전투 중 쓸 수 있습니다. 전세를 한 번에 뒤집는 카드도 있어서, 아껴 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꺼내는 재미가 있습니다.

특정 조건을 맞추면 합류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평판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한 채 특정 스테이지에 도달해야 만날 수 있는 이들이라, 조건을 모르면 존재조차 모른 채 게임을 끝내게 됩니다. 이런 숨은 요소가 많아 발매 당시 잡지 공략 기사가 두툼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느긋해 보이지만 실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진행이 늘어지면 그만큼 제국이 힘을 회복하고, 해방한 도시도 관리하지 않으면 다시 흔들립니다. 지도를 넓게 보면서 어느 방향을 먼저 정리할지 고르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중후한 오케스트라풍 음악과 도트로 그린 지도의 분위기가 좋아서, 전략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세계관에 끌려 붙잡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판이 길지만 그만큼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