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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리

위저드리 (Wizardry Proving Grounds of the Mad Overlord USA) · 1987 · ASC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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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손으로 그리던 게임

이 게임을 하던 사람들의 책상에는 대개 모눈종이가 있었습니다. 화면에는 눈앞의 벽만 보이고, 지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 칸 걸을 때마다 벽인지 통로인지를 확인해 종이에 옮겨 그리며 미궁을 파악해 나갑니다. 회전문이나 순간이동 함정을 밟으면 지금까지 그린 지도와 실제 위치가 어긋나 버려서, 처음부터 다시 확인해야 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지만, 그 불친절함이 곧 재미였습니다. 미궁의 구조를 알아내는 것 자체가 이 게임의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위저드리 RPG 게임 화면 1 - 패미컴 (1987)

어떤 게임인가

위저드리(Wizardry: Proving Grounds of the Mad Overlord)는 1인칭 시점으로 미궁을 탐색하는 RPG입니다. 마을에서 여섯 명까지의 모험가로 파티를 짜고, 지하로 내려가 층을 하나씩 정복해 마지막에 미궁 깊은 곳의 목표에 닿는 것이 전체 흐름입니다.

캐릭터는 직접 만듭니다. 종족을 고르고, 주어진 점수를 능력치에 나눠 배분하고, 그 결과에 따라 될 수 있는 직업이 정해집니다. 전사, 승려, 마법사, 도적이 기본이고, 조건을 갖추면 상위 직업으로 전직할 수 있습니다.

전투는 명령을 입력하고 결과를 지켜보는 방식입니다. 앞줄과 뒷줄이 나뉘어 있어서, 앞줄은 무기로 싸우고 뒷줄은 주문과 활로 지원합니다.

위저드리 RPG 게임 화면 2 - 패미컴 (1987)

파티를 짜는 법

파티 구성이 이 게임의 첫 관문입니다. 앞줄 셋과 뒷줄 셋을 어떻게 채우느냐로 초반 난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앞줄에는 체력이 높고 무기를 잘 다루는 직업을 두고, 뒷줄에는 회복 주문을 쓰는 승려와 공격 주문을 쓰는 마법사를 배치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도적은 언뜻 약해 보이지만 사실상 필수에 가깝습니다. 미궁의 보물 상자에는 함정이 걸려 있는데, 도적만이 이를 확인하고 해제할 수 있습니다. 함정을 잘못 건드리면 파티 전체가 큰 피해를 입거나 최악의 경우 그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능력치 배분은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원하는 직업의 조건을 채울 만큼 점수가 나올 때까지 다시 굴리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시간을 꽤 들이게 됩니다.

죽음이 무거운 게임

이 게임에서 캐릭터의 죽음은 되돌리기 쉽지 않습니다. 마을로 시신을 데려와 소생을 시도할 수 있지만 반드시 성공하지 않고, 실패하면 아예 재로 변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파티 전멸입니다. 미궁 깊은 곳에서 전멸하면 그 자리에 시신이 남고, 새 파티를 꾸려 그곳까지 내려가 회수해 와야 합니다. 초반 캐릭터들이 깊은 층에 누워 있는데 데리러 갈 힘이 없어 발이 묶이는 상황이 흔합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기본 원칙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입니다. 주문 사용 횟수가 줄고 체력이 위태로워지면 미련 없이 마을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 층 더 내려가 보자는 판단이 파티 전체를 잃게 만드는 일이 아주 자주 일어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을 위한 조언

초반에는 지하 1층에서만 반복해 싸우며 경험치와 돈을 모으는 편이 좋습니다. 이 게임은 층이 내려갈수록 적의 강함이 급격히 뛰기 때문에, 준비 없이 내려가면 곧바로 전멸합니다.

주문 목록은 이름만으로는 무엇을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처음 배웠을 때 안전한 곳에서 한 번씩 써 보며 효과를 확인해 두면 정작 위험한 순간에 헤매지 않습니다. 특히 파티를 마을로 되돌리는 주문과 위치를 알려 주는 주문은 생존과 직결됩니다.

지도는 정말로 그려 두는 편이 낫습니다. 종이든 그림판이든 상관없습니다. 층마다 계단 위치와 함정 위치를 표시해 두면 다음 탐색이 몇 배는 수월해집니다.

RPG의 원형

이 작품은 원래 컴퓨터용으로 나온 게임입니다. 이후 수많은 RPG가 이 게임에서 파티 편성, 직업 체계, 던전 탐색의 얼개를 가져갔습니다. 일본에서 특히 인기가 높아 여러 후속작과 파생작이 나왔고, 패미컴판은 그 흐름 속에서 가정용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패미컴판은 원작의 뼈대를 유지하면서 화면 구성과 그림을 새로 다듬었습니다. 몬스터 그림이 붙고 조작이 패드에 맞게 정리되어, 컴퓨터판보다 접근하기 훨씬 쉬워졌습니다. 그래도 본질은 그대로입니다. 지도를 그리고, 아껴 쓰고, 무리하지 않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