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레슬러
챔피언 레슬러 (Champion Wrestler World) · 1989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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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두들기는 소리로 기억되는 게임
오락실 한구석에서 두 사람이 정신없이 버튼을 두들기는 소리가 나면 십중팔구 레슬링 게임 앞이었습니다. 챔피언 레슬러는 그 소리로 기억에 남는 게임입니다. 상대와 몸이 맞붙는 순간 승부가 손가락 속도로 넘어가고, 먼저 밀린 쪽이 그대로 번쩍 들려 올라가 매트에 내리꽂힙니다. 기술이 제대로 들어갈 때마다 관중 함성이 터져 나와서,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까지 같이 어깨를 움찔하게 만들었습니다.
챔피언 레슬러(Champion Wrestler)는 타이토가 1989년에 내놓은 프로레슬링 게임입니다. 저마다 체격과 특기가 다른 레슬러 가운데 하나를 골라 링에 올라가고, 상대를 매트에 눕힌 뒤 심판의 3카운트를 받아내면 한 경기가 끝납니다. 조작은 레버와 버튼 두 개가 전부지만 그 안에 타격, 잡기, 던지기, 로프 반동이 모두 들어 있어서 손에 익으면 꽤 그럴듯한 경기가 만들어집니다.
링 위에서 무엇을 하는가
기본 흐름은 실제 프로레슬링 중계와 비슷합니다. 거리를 두고 있을 때는 발차기와 주먹으로 상대의 체력을 깎고, 붙었을 때는 잡기로 넘어갑니다. 잡기가 성립하면 두 선수가 맞붙은 자세가 되는데 여기서부터가 진짜 승부입니다. 버튼을 빠르게 연타해 힘겨루기에서 이긴 쪽이 기술을 걸고, 진 쪽은 그대로 당합니다.
던지는 기술은 힘겨루기에서 이긴 순간 레버를 어느 쪽으로 넘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냥 넘기면 평범한 메치기가 나오고, 방향을 잡아 주면 더 큰 기술이 들어갑니다. 상대를 로프 쪽으로 밀어 반동을 이용하는 것도 중요한 수단입니다. 로프에 튕겨 되돌아오는 상대를 미리 자리 잡고 기다렸다가 받아치면 한 번에 많은 체력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체력을 충분히 깎았으면 쓰러진 상대 위에 올라타 핀을 시도합니다. 카운트가 셋에 닿기 전에 상대가 몸을 빼면 경기는 계속됩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고, 다 이긴 것 같던 경기가 뒤집히는 일도 종종 벌어집니다.
레슬러마다 달라지는 판
고를 수 있는 선수들은 생김새만 다른 것이 아니라 몸놀림이 확실히 다릅니다. 덩치 큰 선수는 발이 느린 대신 잡기 힘겨루기에서 유리하고 한 방이 묵직합니다. 반대로 날렵한 선수는 이동이 빨라 상대를 흔들기 좋지만, 정면에서 붙잡히면 그대로 끌려다니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기 성향에 맞는 선수를 찾는 것이 이 게임을 오래 붙잡는 이유가 됩니다. 연타에 자신 있는 사람은 아예 힘 좋은 선수를 골라 계속 붙어 싸우고, 손이 느린 사람은 빠른 선수로 치고 빠지면서 상대를 지치게 만듭니다. 두 방식이 만나면 경기 양상이 확 달라져서, 같은 스테이지를 다른 선수로 다시 도는 재미가 있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수는 붙자마자 아무 버튼이나 두들기는 것입니다. 힘겨루기는 이겨야 의미가 있는데, 체력이 많이 남은 상대에게 계속 붙어 봐야 매번 지고 당하기만 합니다. 초반에는 거리를 두고 타격으로 체력을 어느 정도 깎아 놓은 다음에 잡기를 시도하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링 밖으로 나가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밖에 오래 머물면 장외 카운트가 올라가고, 상대가 먼저 들어가 기다리고 있으면 돌아오는 순간 얻어맞습니다. 밀려서 나갔다면 곧바로 복귀하기보다 상대의 자리를 보고 반대쪽으로 들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뒤로 갈수록 상대의 연타 속도가 빨라지고 회복도 잘 하기 때문에, 후반에는 큰 기술 한 번보다 확실한 상황을 여러 번 만드는 쪽이 유리합니다. 로프 반동과 코너를 이용해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요령을 익히면 체감 난이도가 크게 내려갑니다.
오락실에서의 자리
1980년대 후반 오락실에는 레슬링 게임이 꾸준히 있었습니다. 화려한 슈팅이나 벨트스크롤 액션에 비하면 눈에 덜 띄었지만, 둘이서 붙으면 이만큼 시끄럽고 신나는 장르도 드물었습니다. 챔피언 레슬러는 그중에서도 그림이 큼직하고 기술 동작이 시원해서, 처음 보는 사람도 무엇을 하는 게임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한 판이 짧게 끝나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친구와 번갈아 가며 한 경기씩 붙기 좋았고, 지면 곧바로 다시 동전을 넣게 만드는 구조였습니다. 지금 다시 잡아 봐도 조작이 단순해서 설명 없이 바로 시작할 수 있고, 몇 판만 해 보면 힘겨루기의 감이 손에 돌아옵니다.
특히 관중과 심판이 있는 화면 구성이 분위기를 크게 살립니다. 기술이 들어갈 때마다 반응이 오고, 핀 상황에서 심판이 손을 내리치는 동안 화면이 잠시 멈춘 듯 조여 오는 그 몇 초는 대전 격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종류의 긴장입니다. 프로레슬링 중계를 즐겨 보던 사람이라면 더 반가울 만한 연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