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레벌레이션스: 페르소나 (Persona Revelations) · 1996 · At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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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에 시작한 놀이
교실에 남은 학생들이 장난 삼아 놀이를 하나 시작합니다. 정해진 대로 둘러앉아 주문 비슷한 말을 외우면 자기 안의 또 다른 인격이 대답한다는, 어느 학교에나 하나쯤 돌던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는 그 놀이가 정말로 통해 버립니다.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쓰러지고, 깨어나 보니 병원 침대이며, 창밖의 도시는 어딘가 뒤틀려 있습니다.
이 첫 장면이 시리즈 전체의 출발점입니다. 특별할 것 없는 고등학생이 자기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끌어내 싸운다는 설정은 여기서 처음 만들어졌고, 이후 오래도록 이어지는 시리즈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페르소나(Revelations: Persona)는 현대 도시를 무대로 한 턴제 RPG입니다. 사고 이후 페르소나를 부릴 수 있게 된 학생들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의 원인을 좇아 병원과 학교, 지하 시설, 대기업 건물을 차례로 파고듭니다.
던전은 1인칭 시점으로 걷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좌우로 도는 방식이라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며 움직여야 하고, 몇 걸음마다 적과 마주칩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화면이 바뀌어, 격자로 나뉜 전장 위에 인물들이 늘어선 상태로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무기는 근접 무기와 총으로 나뉘고, 격자 위의 거리에 따라 닿는 공격이 달라집니다. 앞에 선 인물이 칼을 휘두르는 동안 뒤에서 총을 쏘는 식이라, 위치를 살피지 않으면 공격이 허공을 가릅니다. 여기에 페르소나를 불러내 쓰는 마법이 얹힙니다.
악마와 이야기해서 카드를 얻는다
이 게임의 전투에는 싸우지 않고 끝내는 길이 있습니다. 적으로 나온 악마에게 말을 거는 것입니다. 인물마다 웃기기, 겁주기, 달래기처럼 서로 다른 대화 수단을 갖고 있고, 상대의 성격에 맞는 방식으로 반응을 끌어내면 악마가 기뻐하거나 흥미를 보입니다.
여기서 얻는 것이 스펠 카드입니다. 이 카드를 벨벳 룸이라 불리는 푸른 방으로 가져가면 새로운 페르소나로 바꿔 줍니다. 코가 길쭉한 남자가 앉아 있는 그 방도 이 작품에서 처음 등장했고, 이후 시리즈마다 모습을 조금씩 바꿔 가며 계속 나옵니다.
같은 악마의 카드를 여러 장 모으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오기도 해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일부러 여러 번 말을 걸게 됩니다. 전투를 피하는 수단이 곧 성장 수단이라는 구조가 이 계열 게임의 가장 큰 재미입니다.
서양판에서 달라진 것
이 작품은 바다를 건너오면서 손을 많이 탔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서양식으로 바뀌었고 얼굴 그림도 다시 그려졌으며, 무대가 되는 도시의 이름까지 바뀌었습니다. 일본 고등학교의 풍경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서양 어느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보이도록 고쳐 놓은 것입니다.
더 큰 차이는 통째로 빠진 이야기입니다. 원판에는 본편과 별개로 학교에 갇힌 채 진행되는 다른 갈래가 하나 더 들어 있었는데, 서양판에서는 이 부분이 아예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같은 제목의 게임인데도 어느 판으로 하느냐에 따라 볼 수 있는 이야기의 양이 달라집니다.
처음 하면 막히는 곳
초반이 가장 힘듭니다. 쓸 만한 페르소나가 없는 상태에서 적과 마주치는 빈도는 높고, 회복 수단은 빠듯합니다. 요령은 처음부터 대화를 부지런히 시도해 카드를 모으고 벨벳 룸을 자주 들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싸우기만 하면 소모전에서 밀립니다.
총알과 회복 도구는 아까워하지 말고 사 두는 편이 낫습니다. 던전 안에서는 보급이 되지 않으니 들어가기 전에 준비를 끝내야 합니다. 길을 잃었을 때는 한쪽 벽만 따라가는 오래된 방법이 의외로 잘 통합니다.
시리즈의 출발점
이 작품은 여신전생 계열에서 갈라져 나온 첫 곁가지입니다. 악마와 대화한다는 장치는 본가에서 그대로 가져왔지만, 무대를 학교와 도시로 좁히고 주인공을 평범한 학생으로 바꾼 것이 결정적인 차이였습니다. 어둡고 무거운 음악과 기묘한 도시 풍경도 이 작품의 인상을 만듭니다.
국내에서는 정식 발매 없이 지나간 축이라 제때 즐긴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한참 뒤에 나온 후속작들이 크게 알려진 다음에야 시리즈의 시작이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고 거슬러 올라왔습니다. 지금 보면 전투도 던전 탐색도 투박하지만, 이 시리즈가 무엇에서 출발했는지 확인하기에는 이만한 게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