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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94

피파 인터내셔널 사커 (Fifa International Soccer USA Europe En Fr de Es) · 1993 · Electronic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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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게임의 시점을 바꾼 한 판

1993년 이전의 축구 게임은 대부분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거나 옆에서 보는 화면이었습니다. 선수는 콩알만 했고, 공을 차는 감각보다는 방향키로 미는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피파 인터내셔널 사커는 화면을 비스듬히 기울였습니다. 이른바 등각 시점입니다.

이 변화가 만들어 낸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선수의 등과 어깨가 보이고 골대가 원근감을 가지고 서 있으니,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실제 축구 중계를 흉내 낸 기분이 듭니다. 이후 축구 게임이 어떤 화면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이 여기서 하나 세워졌습니다.

피파 94 스포츠 게임 화면 1 - 메가 드라이브 (1993)

어떤 게임인가

피파 94(FIFA International Soccer)는 국가대표팀을 골라 상대와 겨루는 축구 게임입니다. 단판 경기, 토너먼트, 리그 형태의 대회를 치를 수 있고, 경기 시간과 난이도, 심판의 엄격함까지 손볼 수 있습니다.

조작은 단순합니다. 공을 가지고 있을 때는 짧은 패스, 긴 패스, 슛이 각 버튼에 배정되고, 수비할 때는 태클과 선수 전환이 같은 버튼에 붙습니다. 버튼을 얼마나 오래 누르느냐로 패스와 슛의 세기가 결정되므로, 짧게 톡톡 끊어 누르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 첫 관문입니다.

피파 94 스포츠 게임 화면 2 - 메가 드라이브 (1993)

처음 하는 사람이 겪는 일

처음 잡으면 공이 제멋대로 굴러갑니다. 원인은 대부분 버튼을 너무 오래 누르는 것입니다. 짧은 패스도 꽉 누르면 옆 선수를 지나쳐 상대에게 넘어가고, 슛도 마찬가지로 골대 위로 훌쩍 넘어갑니다. 상황에 맞게 누르는 길이를 조절하는 것이 이 게임의 핵심 기술입니다.

수비도 요령이 필요합니다. 태클 버튼을 마구 누르면 반칙이 되고, 심판 설정을 엄격하게 해 놓았다면 경고나 퇴장까지 나옵니다. 상대의 진행 방향을 막아서서 자연스럽게 실수를 유도하는 편이 더 안전합니다.

골키퍼가 직접 조작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수비 위치를 잡아 주는 것으로 대신해야 하니, 문전에서는 상대의 슛 각도를 좁히는 데 신경 써야 합니다.

국가대표팀만 나오는 이유

이 작품에는 클럽팀이 없고 국가대표팀만 등장합니다. 선수 이름도 실명이 아닙니다. 초기 스포츠 게임에서 실명 사용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웠는지를 보여 주는 부분입니다. 대신 국가별로 전력 차이가 뚜렷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강팀을 골랐을 때와 약팀을 골랐을 때 경기 양상이 확실히 다릅니다.

약팀으로 강팀을 이겼을 때의 만족감이 커서, 일부러 전력이 낮은 팀을 골라 대회를 도전하는 방식도 자주 쓰였습니다.

이 시리즈의 출발점

피파는 이 작품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첫 작품인 만큼 지금 기준으로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 차이가 세밀하지 않고, 전술 조정 폭도 좁습니다. 오프사이드 판정이나 세트피스 처리도 단순한 편입니다.

그러나 축구를 게임으로 옮길 때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기본 골격은 여기서 대부분 갖춰졌습니다. 등각 시점, 버튼 길이로 조절하는 패스와 슛, 대회 구조, 경기 설정. 이후 작품들은 이 뼈대 위에 살을 붙여 나갔습니다.

함께 하면 달라지는 게임

이 게임의 진가는 둘이서 할 때 나옵니다. 컴퓨터를 상대로 하면 패턴이 금방 읽히지만, 사람끼리 붙으면 패스 길이 하나, 태클 타이밍 하나로 승부가 갈립니다. 조작이 단순한 만큼 배우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처음 잡은 사람과도 바로 경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 게임을 해 본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대체로 그 장면입니다. 화면 앞에 둘이 앉아 소리를 질러 가며 한 골을 놓고 다투던 시간입니다.

지금 다시 하면 선수들이 느릿하고 공의 움직임도 단순합니다. 그래도 몇 분만 하면 손이 기억을 되찾습니다. 관중석의 함성과 골이 들어갈 때의 효과음은 여전히 기분이 좋습니다.

축구 게임의 형태가 여기서 한 번 정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번쯤 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