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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 13

골고 13 (Golgo 13 Top Secret Episode USA) · 1988 · Vic Tok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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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카트리지에 장르를 몽땅 집어넣은 패미컴 게임

이 게임을 처음 켠 사람은 대체로 같은 순서로 놀랍니다. 옆으로 걸어가며 총을 쏘는 액션이 나오다가, 갑자기 화면이 1인칭으로 바뀌어 미로를 헤매게 되고, 또 얼마 뒤에는 저격 조준경 화면이 뜹니다. 잠수함을 몰고, 헬리콥터에 매달리고, 문을 두드려 정보를 캐고 다니는 장면까지 하나의 카트리지 안에 들어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 패미컴에서 이만큼 장르를 뒤섞은 작품은 흔치 않았습니다. 롬 용량이 빠듯하던 시절에 굳이 이렇게 여러 시스템을 욱여넣은 이유는 원작이 첩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하는 일이 잠입이고 추적이고 암살이니, 그때그때 화면 형식을 갈아 끼우는 편이 이야기에 맞았던 것입니다.

골고 13 슈팅 게임 화면 1 - 패미컴 (1988)

어떤 게임인가

골고 13(Golgo 13: Top Secret Episode)은 사이토 다카오의 만화 원작을 옮긴 액션 어드벤처입니다. 세계 최고의 저격수 듀크 토고가 되어 도시를 옮겨 다니며 사건을 쫓고, 결국 배후에 있는 조직과 맞붙는 것이 줄거리입니다.

한 판의 기본 흐름은 옆으로 진행하는 액션입니다. 걸어가며 권총을 쏘고, 적의 총알을 피하고, 몸을 낮춰 엄폐합니다. 그러다가 특정 지점에 도달하면 다른 화면으로 전환됩니다. 건물 안에 들어가면 1인칭 시점의 통로 탐색이 되고, 목표물이 멀리 있으면 조준경 화면으로 넘어가 미세하게 십자선을 움직여 한 발을 쏩니다.

이 저격 장면이 이 게임의 얼굴입니다. 조준선이 숨결에 맞춰 미세하게 흔들리고, 대상이 잠깐 멈추는 순간에 방아쇠를 당겨야 합니다. 액션 파트에서 총알을 마구 뿌리다가 이 화면으로 넘어오면 갑자기 숨을 죽이게 되는데, 그 온도 차이가 꽤 인상적입니다.

골고 13 슈팅 게임 화면 2 - 패미컴 (1988)

1인칭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크게 막히는 곳은 1인칭 시점 구간입니다. 벽이 똑같이 생긴 통로를 앞으로, 좌우로 돌면서 나아가는데 지도가 따로 없어 방향 감각이 금세 무너집니다. 여기서 헤매다가 시간과 체력을 다 쓰고 되돌아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령은 단순합니다. 벽을 한쪽으로 정해 놓고 계속 그쪽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오른쪽 벽이면 오른쪽 벽만, 왼쪽이면 왼쪽만 붙어 도는 식으로 진행하면 언젠가는 출구에 닿습니다. 종이에 대충이라도 지나온 길을 그려 두면 훨씬 편해집니다. 당시 이 게임을 붙잡던 사람들이 실제로 공책에 미로를 그려 가며 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난이도와 체력 관리

전체적으로 인심이 후한 게임은 아닙니다. 액션 구간에서 적의 총알이 제법 빠르게 날아오고, 회복 수단이 넉넉하지 않아 앞 스테이지에서 헤프게 맞으면 뒤에서 그대로 무너집니다. 특히 화면 양쪽에서 동시에 나오는 적을 상대할 때는, 무리해서 둘 다 잡으려 하지 말고 한쪽으로 붙어 각도를 좁히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동 수단이 바뀌는 특수 구간도 함정입니다. 잠수함이나 공중 장면은 등장 빈도가 적어서 조작에 익숙해질 틈이 없습니다. 이런 곳은 한 번 죽어 보고 어떤 조작인지 파악한 뒤 두 번째 시도에서 넘기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처음 보는 화면에서 곧바로 완벽하게 대응하려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원작을 옮긴 방식

패미컴 시절 만화 원작 게임은 캐릭터 얼굴만 빌려 오고 내용은 평범한 액션인 경우가 흔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부류와 결이 다릅니다. 도시를 옮겨 다니는 구성, 정보를 얻고 다음 목표로 향하는 흐름, 무엇보다 저격이라는 행위 자체를 별도의 화면으로 떼어 낸 설계가 원작의 성격을 그대로 겨냥하고 있습니다.

성인 취향의 원작이었던 만큼 연출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스테이지 사이에 들어가는 정지 화면과 대사는 액션 게임보다 극화에 가까운 분위기를 냅니다. 밝고 경쾌한 게임이 주류였던 패미컴 라인업 안에서 이런 어두운 톤은 그 자체로 눈에 띄었습니다.

국내에서의 기억

한국에서는 만화 골고 13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던 덕에, 주인공 이름보다 "저격수 게임"으로 통했습니다. 복사 카트리지에 실려 돌던 시절, 화면이 갑자기 1인칭으로 바뀌는 대목에서 다들 한 번씩 당황했다는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1인칭 구간의 답답함이나 특수 조작 장면의 불친절함은 분명한 약점입니다. 그래도 하나의 카트리지에서 이렇게 많은 종류의 화면을 만나는 경험은 지금도 흔치 않습니다. 저격 화면에서 조준선을 겨우 멈춰 세우고 한 발을 쏘는 순간만큼은, 만든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가 분명하게 전해집니다.